북한의 권력실세 3위인 리영호 인민군 총 참모장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해임되었다고 16일 북한 중앙통신이 보도하였다고 한다. 선군 정치를 하는 북한으로 보면 이 사건은 너무 이례적이어서 국내 북한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의견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에 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어떤 전문가는 북한의 방송대로 신병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전문가는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북한에서 당과 군이 체제를 떠받치는 체제하에서는 당과 군의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두들 바라보는 시각으로 한 쪽만 보는 견해가 아니라 북한의 현 상황을 직시해 보기로 하겠다. 현재 북한상황은 대단히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다. 게다가 중국으로부터 개혁 압박을 받고 있고 한국과 미국으로부터는 심리적으로 경제적인 압박을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해야만 김정은 체제를 견고화하고 북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방세계로 유학을 했던 김정은과 서방세계를 너무 잘 아는 장성택이 실권을 쥐자 개혁개방에 절대적으로 장애물로 작용하는 군을 손보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당과 군이 이끌어 왔던 선군 체제를 당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당은 군을 통솔하기 위해서 당에 반대하는 군 고위층을 숙청하는 사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사람들은 현 상황을 두고 지레 북한군이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일인체제를 지향하는 북한에서 군은 일인체제에 복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당에서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한 군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리 총 참모장의 해임은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간다는 신호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북한이 개혁 개방의 초기에는 한반도 정황상 현 상태대로 중국에 의존해서 이루어나갈 것이지만 서서히 한국과도 경제협력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북한이 중국 경제에 종속되어 의존적이 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적당한 시점에서 북한의 당 권력층과 경제협력에 관해서 협의를 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정일 북한 국방 위원장이 17일 오전 심장 발작으로 급서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른 한반도의 정세 변화를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한반도의 정세변화는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세운 김정은이 북한 권력을 장악했을 때와 그렇지 못할 경우이다.  

첫째로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고 군부가 지지할 경우에는 한반도의 정세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도 이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둘째는 김정은의 권력 장악력이 약할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반대파를 말살하려 할 것이므로 그 화살을 남쪽으로 돌릴 가능성이 있지만 권력 장악의 초기에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이 갑자기 후계자로 확정되었다고 해도 이미 절대 권력에 복종만 해 온 군부가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반기를 들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통치 경험이 없는 김정은이 북한 국민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도발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사실 이것이 한반도의 정세를 가장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감안한다면 2012년 후반기부터 2013년 전반기가 한반도가 가장 불안정한 시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것은 북한 단독으로 판단할 때이고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한반도를 불안정하게 하는 가정 큰 요인은 북한의 단독 행동 이외에 경제 붕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이번 기회에 재빨리 특사를 북한에 보내서 이와 같은 문제를 비롯하여 한반도 문제를 논의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이 급서했다고 해서 북한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고 이에 따른 한반도의 정세 변화도 당분간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김정은의 멘토들에 따라서 남-북한 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두 나라사람들 사이에 동질화된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우선 한국인들에게 일본인들과 동질화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항의를 해 댈 것이다.

이번에는 일본인들에게 같은 말을 하면 그들도 바보 같은 이야기는 그만두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이전의 불행한 역사의 몇몇 사실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

특히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사실 때문에 두 나라사람들은 상대국에 대해서 다른 시야를 가지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두 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형제들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화해를 한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것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나라 관계도 적대시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내 화평하게 되는 시기도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두 나라의 관계는 누가 보아도 화평한 시기라고 생각되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관계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서 우호적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

, 두 나라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질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앞에서 인용한
타임스의 앤드루 새먼(Andrew Salmon) 서울 특파원의 기사로부터 나라사람들의 동질화에 관련된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해 보기로 하겠다.

그는 현대의 일본은 오히려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연대감을 느끼는 심정을 이해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 인생경험, 가치체계와 문화에 있어서 한국은 북한보다 일본 쪽에 훨씬 가깝다라고 썼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아닌 3 인의 관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두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있어서 동질화가 급속히 진행되게 것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나라사람들이 생활상으로 거의 비슷하게 된데다가 정보 통신과 교통과 같은 매체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동질화되는 데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나라에 원래 형성되어 있었던 기본요소나 조건과 같은 근원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서 기본요소라고 하는 것은 나라사람들이 동일한 정신세계의 영역에 있는 것을 말하며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나 관습 등이 교류에 의해서 닮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나라사람들의 동질화를 방해하는 인자로서는 마음의 장벽, 정치가, 국수주의자 그리고 편향된 사고나 사상을 가르치는 교육들을 수가 있다.

이러한 동질화의 방해인자들은 나라 간에 있어서 정보전달이나 인적 교류에 의해서 문화나 관습 등이 상대국으로 전달되어서 별로 영향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나라사람들 중에서 겉으로는 동질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원동력이 돌아가고 있는 동질화된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나라사람들은 빈번하게 상대국을 방문하여 문화나 생활풍습 그리고 관습을 보고 자기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라 사이에 인적 교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나 가요와 같은 대중문화가 믹서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같지만 일본인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에 관해서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게 되자 일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현대 일본의 경제와 산업은 세계에서 상위에 있다고 하지만 대신에 사람들은 인간성의 상실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메마른 사회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은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서 외톨이처럼 생각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일본인들 중에서 일부는 아직도 인간이 사는 냄새가 나는 한국의 문화나 생활 풍습을 알게 되어서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있다.


그들은
마음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듯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러한 일본인들 중에는 바쁜 생활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여인들이 많은 같다.

그녀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며칠간 지낸 ,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다시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한국은 외국이 아니라 자기네 나라처럼 느끼게 되어서 동질화되어 있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있다.

, 한국인들은 1960 이후부터 한국의 텔레비전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일본의 문화나 생활 풍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일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속에는 일본 것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여행이나 쇼핑을 위해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보면 있는 일이다.

그들은 일본을 경험했기 때문에 일본의 거리를 걷는다고 해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이전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한국인이 한국인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한국인이 일본인을 만나면 도깨비를 보듯 하던 시대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이다.

지금은 일본을 왕래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일본은 막연한 나라는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인들처럼 자연스럽게 동질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나라 사이를 왕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년에 수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더욱 늘어나서 마치 이웃집으로 놀러 가는 것처럼 되어서 상대국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익숙해질 것이다.

결국 나라사람들을 동질화시키는 것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인적 교류라고 있다.


앞에서
기술하였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질은 같지만 한국인은 외부로 지향하고 일본인은 내부로 지향한다고 했다.

나라사람들의 기질은 동질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균형이 되는 곳에서 중심을 잡을 것이다.

, 인적 교류에 의해서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아지기 위해서 내부로 지향할 것이고 반대로 일본인의 기질은 외부로 지향하게 되어서 마침내는 어느 점에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점이 처음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동질성이고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동질화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동질화가 이루어진다면 서로 마음의 벽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부산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거리에서 만난다고 해도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로서 동경에 살고 있는 사람이 오오사카의 거리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인들을 만나도 같은 느낌을 갖게 것이다.

이와 같이 느끼는 것은 사람들 간에 무의식 중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있다.


나라의 동질화에 관한 예로서 한국의 조선일보에2011 01 17,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기사가 있어서 인용해보기로 한다.

기사는 한반도 연구를 40 동안이나 오코노기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를 인터뷰한 것이다.

그는 기자가 한국과 일본은 가까워질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던 것이다.

, “일본과 한국은 산업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철강이나 조선과 같은 중공업을 기본으로 하여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첨단제품에 경쟁력이 있다.

국가 목표도 비슷하다.

목표가 같고 수단이 같으면 이익을 공유할 있다.

물론 역사와 문화는 다르다.

하지만 세계적 시야로 보면 쌍둥이 같은 나라다라고 하였다.

오코노기 교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바라 것인데도 쌍둥이 같은 나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라사람들은 문화, 관습이나 종교가 유사한데다가 정치나 경제의 체계가 같은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동질화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앞으로는 과학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서 두 나라 사이에서 정보전달이나 인적 교류가 빈번하게 되어서 동질화는 완성되고 유지되어 갈 것이다
.

두 나라사람들 간에 동질화된 후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것 같이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은 짐을 등에 지고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국경의 형태는 집에 담장이 있는 것처럼 명목상 유지될 뿐이고 두 나라사람들은 부담감 없이 교류를 할 것이다
.

그러므로 두 나라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 수 많은 나라가 있는 중에서 서로 위로를 주고 받으면서 때로는 부딪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은 처음부터 신앙과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두 나라의 기질, 음식이나 관습 등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으며 사용하는 언어도 어순이나 억양이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두 나라사람들이 공통의 요소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 동질화되어 있어야만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두 나라가 서로 인정만 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마음 속으로는 동질화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동질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

이것은 근대에 일본이 한반도를 35년간 강제로 점령했던 사실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지배한 사실뿐만 아니라 다른 원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를 테면 정치인들이 자기의 정치 목적을 위하여 상대나라에 대하여 국민들에게 나쁜 감정을 갖도록 했다든가 지식인들이 지식을 전달하면서 적대인식을 심어주었을 수도 있다.

그 위에 두 나라의 국수주의자들이 상대나라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다.

이들 요인들은 두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는 데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역시 가장 큰 장애 요소로서 역사관계를 제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 국경을 사이에 둔 두 나라사람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지내온 적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예를 들면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그리스와 터키의 관계가 그렇다.

이것은 국경을 마주한 나라간에는 모든 면에서 경쟁의식이 있고 국가와 국민의 존립을 위해서 보호의식이 본능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특히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유난히 심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역사 관계에서 기인한 것으로서 갑자기 생겨 난 것이 아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이 한반도를 35년간 강제로 점령한 사실은 이전의 역사 관계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의해서 한반도가 빈번하게 침범 당했던 이전의 역사적인 사실보다도 근대에 들어와서 긴 세월 동안 고통스럽게 살아온 것을 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한국과 일본은 이웃 국가이지만 좋은 이웃이라기보다는
자기들을 끊임없이 괴롭힌 존재라는 잔영이 길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방된 후에는 일본에 대해서 억압된 감정이 분출하여 적대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범하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가 백제
, 신라 그리고 고구려로 분할되어 있었던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왔다. 삼국시대에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범한 것은 일본의 중앙 정부가 아니라 일부 지역인 쓰시마나 본토 해안에 거주하고 있었던 해적들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한국의 역사에서는 삼국시대에만 30여 회에 걸쳐서 일본에 의해서 침범 당했는데 주로 신라의 해안지방이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끊임없이 침범하는 중에도 백제, 신라 그리고 고구려의 각종 문화나 종교 그리고 학문 등이 일본으로 유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있었던 세 나라가 일본에 침범을 당하면서도 교류를 하였던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

이에 대해서는 일본측에서 한반도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계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본으로 유입된 한반도의 문화는 세 나라 중의 어느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전부의 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인 문화의 흐름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일본에 한반도의 문화와 직접적으로 접촉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세 나라 사람들이 지리상으로 가까운 일본으로 건너가서 정착한 후, 본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과 일본인이 정신세계나 기질 그리고 습관 등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다.

만약 한반도의 세 나라 중에서 어느 한 나라의 사람만이 일본에 정착을 하였다면 그 나라의 문화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세 나라의 문물이 동시에 일본으로 유입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세 나라의 사람들이 정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앞에서도 기술한 것과 같이 한국의 각 지방의 사투리와 대응하는 일본지방의 사투리가 있다고 하는 것이 또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한반도의 세 나라와 일본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한반도를 빈번히 침범했다는 것은 중앙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한반도를 침범한 집단을 일본 전체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실이 자손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

그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과 일본인들은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에 의한 침범은 한반도의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다음의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었고 고려 말에 해당되는 1300년대에는 무려 484회나 된다고 역사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조선시대에도 일본인에 의한 침범은 계속되어서 초기에는 내륙지방까지 들어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침범한 주 목적은 식량을 얻기 위한 것이었지만 당연히 사람을 죽이거나 납치해 간 것은 물론이고 문화재의 약탈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것은 주로 힘없는 조선의 백성들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만 가지고도 한국인들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지도 모른다
.

그런데 조선초기까지는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자주 침범했다고 해도 전쟁규모가 아니라 해적수준에 불과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중앙정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조선 중기에 해당하는 1592년이었다.

이 전쟁은 일본이 국가차원에서 조선을 침범하여 7년간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명나라까지도 전쟁 속으로 끌어들이므로 해서 가히 동북 아시아 대전이라고 할만한 규모의 전쟁이었다.

조선이 전쟁터가 되었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 백성들이 입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전쟁에 의해서 조선은 초토화되었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인육까지 먹어야만 할 정도로 혹독한 생활을 하였다고 왕조실록이나 문서 그리고 책 등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조선 백성들의 귀나 코를 베어서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잔인한 행위를 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 한국인들 사이에 전해져 왔던 것이다. 

전쟁에서 포로는 따르게 마련이지만 이 전쟁에서의 포로는 약간 이상한 것이 있다.

, 조선의 도공이나 화공들과 같은 기술자들을 끌고 갔다고 하는 것인데 이로써 그 당시 일본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정치, 경제, 언어 그리고 풍속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오늘 날까지 한국인들이 그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 조선이 일본 영토를 공격한 것은 쓰시마에 근거한 해적들을 토벌하기 위해서 초기에 군사를 보낸 것이 그나마 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

이것은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으로 조선이 군사적으로 일본을 공략할만한 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정치체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 시대에도 조선은 현대와 같은 정치체계를 갖추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시대에 일본은 무력에 기반한 세력들이 서로 겨루고 있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일본은 힘이 강한 자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구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무라이들을 선비라는 한자로 표현되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칼의 힘에 의해서 통치되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무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한반도를 끊임없이 침범했다고 생각되지만 최고 정점에 다다랐던 것이 임진왜란이었던 것이다.

, 일본 내에서 무력 세력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을 때는 내부에서 그 힘을 소진하였지만 일본 전체의 무력이 합쳐졌을 때에는 그 폭발력을 외부로 돌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통치체계는 근대까지 계속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일본이 칼에 의해서 지배된 것은 분명히 서로 다른 세력들이 부딪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력의 힘이 가장 센 자가 중앙을 장악하여 일본을 통치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의 의도에 따라서 국가를 전쟁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고 평화를 유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대표되는 두 인물이 토요토미히데요시와 토쿠카와이에야스일 것이다.

전자가 국가를 전쟁으로 몰아넣었다면 후자는 평화를 유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임진왜란 이후
, 일본에서는 토쿠가와이에야스가 쇼군이 되어서 에도 막부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 에도 막부가 들어선 이후, 조선과 일본의 관계는 비로소 우호 관계 속에서 260년 간 평화를 유지하면서 교류를 하였던 것이다.

이 시기부터 일본도 무력에 의한 통치시대가 끝나고 실제로는 문치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이 시기가 두 나라의 문화나 생활 습관 등이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쌓아 올린 토대 위에서 완성되어 갔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 당시 문화는 조선에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일본은 섬으로 되어 있어서 자연히 폐쇄되어 있는 형태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자생된 문화가 한반도의 그것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한반도 쪽으로 흘러 들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문화를 조선이 먼저 문화를 받아들여서 완성된 후에 일본으로 흘러 들어 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문화의 바람은 대륙에서 해안으로 불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일본의 동쪽에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면 문화는 그 나라 쪽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나 화공들을 비롯한 수많은 포로들이 일본에 정착하였을 것이다
.

그들에 의하여 조선의 문화가 일본 사회로 직접 녹아 들어 가게 되어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동질화 될 수 있는 정신세계나 관습을 더욱 풍부하게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조선과 일본 사이에 문화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평화적인 관계가 지속된 것은 에도 막부까지였다.

이것은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일본에서 명치시대로 바뀌고 나서 이번에는 조선에서 건너가는 문화보다 더 우수한 문화가 한반도의 반대 쪽에서 일본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

, 문화의 바람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불어가던 것이 서양에서 일본으로 불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예에 따라서 이번에는 일본의 문화가 조선보다 월등히 앞서갔기 때문에 선진 문화의 바람은 일본으로부터 조선으로 불어와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자기들이 대륙에서 문화를 받아들였을 때와는 달리 자국 내에 가두어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일본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당시 조선도 일본처럼 서양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나라안에 갇혀버린 정치인들 때문에 날려버렸다.

어쨌든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최신 학문이나 문화 그리고 기술을 받아들여서 근대국가로 탈바꿈했지만 그렇지 못한 조선은 제자리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 일본은 칼보다 더 강력한 총으로 바꾸어 쥐었다.

그리고 일본의 힘이 강해졌을 때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외부로 그 힘을 사용할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침내 일본제국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1910년에는 조선의 국권을 빼앗아버리고 조선의 황제도 없애버렸다.

말하자면 조선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으로 만들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두 나라 역사를 되돌아 보면 일본이 한반도를 계속적으로 침범은 하였지만 나라까지 없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조선에서 일본으로 평화적으로 문물이 흘러간 것만을 생각하는 한국인들로서는 일본의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조선에 관한 여러 행위를 구태여 이해한다고 하면 어떤 미국의 심령학자의 말대로 일본에 있는 영혼들이 한반도로 들어가고 싶어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

일본제국은 한반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내선일체라고 하여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그 당시까지 조선인들은 자기들이 일본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일본인들도 나름대로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자기들보다 뛰어나지 못한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려고 시도한 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일본제국은 일본인화 정책으로서 조선인들과 일본인들을 결혼까지 강제로 시키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학교에서는 한국어 대신에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했다든지 이름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정책까지도 실시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개조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일본제국은 이에 의해서 조선인들이 일본인화될 줄로 알았던 것이다.

지금도 당시의 영향으로 일본어가 한국어화된 것들이 있는데 특히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일본제국의 정책이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는 정책 중에서 가장 잘 못된 것은 일본식으로 이름을 쓰도록 했던 정책이었다
.

그런데 조선에는 조상 때부터 미래의 세대까지 가족관계를 기록한 족보라는 것이 있어서 앞으로 수 십대의 후대까지 이름 짓는 규칙을 정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성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자기의 가계와 몇 대째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선인들에게 이름을 바꾸라는 것은 부모를 바꾸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인들에게 가계를 잇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본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이 왜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짓을 시도했는지는 그 때 관리로 근무했던 일본인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

한가지 생각되는 것은 두 나라사람들의 동질성에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일본제국은 두 나라 사람들을 동질로 간주해서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제국처럼 식민지 국민을 적극적으로 자국민화하려고 시도한 예는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와 같은 일이 불과 일백 년 전에 일어났었다.
일본제국이
내선일체를 내세워서 일본인과 조선인을 동일체로 만들려고 하였던 것은 두 나라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외형적인 모습만을 동질화시키려는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민족은 오천 년의 역사 속에서 수 많은 역경을 넘어서 살아왔기 때문에 나라를 강제로 합병 당했다고 해서 일본인화될 수는 없었다.


한편
, 일본제국은 거대한 힘을 처리하기 위하여 대동아 공영 권이라는 구실로 중국을 점령하고 마침내 태평양까지 전선을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서 인력과 물자가 부족하게 되고 일본 내에서조차도 식량이 부족하였다고 한다.

일본제국은 이러한 것들을 보충하기 위하여 본토에서 제일 가까운 조선에서 모든 것을 차출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의 젊은 남자들은 모두 일본군이나 노역으로 전선으로 보내지고 젊은 여자들은 군인들의 성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전쟁터로 끌려가서 죽어갔다. 일본제국에 의한 징집이 얼마나 심했느냐 하면 한반도의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도 전쟁터로 끌려간 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한 두 명은 있을 지경이었다.

일본제국은 나이든 사람들까지도 전쟁터나 일본의 탄광 등에서 노역을 시키기 위해서 징집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조선에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끌고 간 셈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의 비참한 상태 중에서도 인간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되는 것은 아무래도 꽃다운 조선의 젊은 여인들을 들지 않을 수 없다
.

그녀들은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다니는 전쟁터의 우리에 갇혀서 군인들의 성욕을 채워주는 짐승보다도 못한 생활을 강요당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인간의 정신을 말살하는 잔인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이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된 지금,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당시의 괴로움이 보상금을 받았다고 해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들이 몇 푼의 보상금을 받는다고 해도 동물처럼 생각했던 마음이 인간으로 돌아올 리는 없겠지만 다만 그렇게 하여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평양 전쟁이 조선에 남긴 후유증은 이 뿐만이 아니다
.

일본에서 노역시키기 위해서 끌려간 사람들이 일부는 자의든 타의든 일본에 정착을 하였다.

그들이 일본에 정착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지만 겉으로는 일본사회에 동질화되어서 일본인화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두 나라 사람들을 동질화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일본제국이 조선을 강제로 지배한 것에 의해서 고통을 받았던 것은 전선이나 노역으로 끌려간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선에 남아있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농촌에서는 쌀이 수확되면 공출로 강제로 빼앗아갔다고 한다.

그 대신에 조선인들의 부족한 식량은 만주에서 기름을 빼고 남은 콩이나 들깨의 찌꺼기를 들여와서 공급하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물을 키우는 사료로 조선인들의 생명을 연장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의 통치아래서
35년간이나 험난한 세월을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어려운 시기를 살아왔던 사람들이 입으로 그 상황을 전해주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당연히 한국인들은 반일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간접적으로 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이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 세대의 표면적이 모습이고 내면적으로 현대의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문화의 소재를 판가름하지는 않는 것 같이 보인다. 

어쨌든 일본제국이 무력을 앞세워서 조선을 강제로 점령했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조선은 오천 년이나 되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주변국들로부터 침범을 받으면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일본제국이 아무리 강제적으로 조선의 문화를 말살하여 조선인들을 일본인화시키려고 하였지만 실패할 수 박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일본인들도 전쟁 중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통을 당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제국이 일으킨 전쟁이었고 그것으로 인해서 조선인들이 고통을 받았던 것과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다.

일본이 내선일체라는 말로 강제적으로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해서 두 나라 사람들을 동질화시키려고 하였지만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을 보면 동질화는 강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보여진다.

이상의 사실을 알면서도 한국인들에게 반일감정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유난히 일본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일본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강국인데도 한국인들은 그들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은 이웃나라이고 교류가 빈번해서 다른 나라보다도 더 잘 알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겉보기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성격이 내부 지향적이어서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생활이 바빠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일본인이 말해 준 것이 일본인들의 생각과 기질을 가장 잘 말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배울 것이 있으면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관심조차 없다는 말이 된다.


한국인들은 일본제국이
35년간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한 것에 의해서 괴로운 시기를 살아왔기 때문에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대부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기술한 사실들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마음을 현해탄의 거리만큼 멀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강제 점령한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통스러운 생각은 두 나라사람들의 동질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

또한, 일본인들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우월감과 무관심도 동질화를 가로막는 요소가 될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언어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대화자에게 전달하는 도구이다. 

이것은 나라마다 달라서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끼리는 자기 나라의 언어로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 언어의 영역을 벗어나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

지금은 언어의 환경이 약간 변했지만 원래 언어는 자기 나라의 안에서만 통용되는 도구였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일본에 가서 한국어로 자기의 의사를 일본인들에게 전달 하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언어의 영역 안에서만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언어가 같은 영역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거의 유사한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과는 반대로 언어가 같은 영역 안의 사람들의 두뇌에 사물의 대상을 입력시킬 수도 있다
.

예를 들면 어떤 나라이든 동물이나 조류의 우는 소리를 흉내 낼 때는 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한다.

이것을 같은 나라안의 사람들이 반복해서 듣고 두뇌에 입력하였기 때문에 같은 소리로 흉내를 내게 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라가 다르면 같은 동물이나 조류의 우는 소리도 다르게 표현될 것이다.

이와 같이 언어가 사람의 사고나 감정을 만들어 내는 역 현상의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우에서도 같은 어순과 억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 

, 한국어나 일본 언어가 어순이 같을 경우, 생각이나 감정을 풀어내는 메커니즘이 같을 것이고 억양은 그 폭을 결정하는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의 언어는 발음만 다를 뿐 어순, 억양이나 단어가 거의 같아서 마치 형제와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은 일본어를 한국어로, 반대로 한국어를 일본어로 번역할 때, 거의 완벽하게 번역되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한국어와 일본어에 있는 특징중의 하나는 상대의 나이나 지위에 따라서 부르는 호칭이나 어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

두 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영어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울 때 존칭어나 낮춤말 등의 어법을 익히기 위해서 꽤나 고생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두 나라의 어법에 관해서 평생을 배워도 완벽하게 사용하지 못 할 정도로 어려울 것이다.

사실, 두 나라 사람들도 어법을 혼동할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언어가 어렵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혀야 겨우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이와 같이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과 어법이 닮아 있다는 것은 언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두 나라의 언어에서 억양은 각 지방에서 사용되는 사투리마다 다르다
.

이것은 인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부터 그 지방에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언어가 고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투리를 주의 깊게 들어보면 한국의 각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는 사투리에 대응하는 일본의 지방의 사투리들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예를 들어 칸사이 지방에서 사용되는 사투리의 억양은 한국의 경상도의 말과 같이 들리기 때문에 그들이 칸사이 지방에 가서 일본 말을 하면 완전히 칸사이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이 들릴 것이다.

그러므로 칸사이 지방의 사투리를 쓰는 일본인들은 경상도 사람들이 말하는 일본어가 한국의 다른 지방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알아 듣기 쉬울 것이다. 한국의 경상도 지방은 삼국으로 분할되어 있을 때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지방이다.

아마도 신라에서 사용되었던 사투리가 그대로 남아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 왔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예를 또 하나 들자면 일본의 후쿠이 지방의 사투리는 한국의 충청도 말과 너무 흡사해서 충청도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깜짝 놀랄 것이다
.

한국의 충청도 지방은 이전에 삼국시대에 백제, 신라 그리고 고구려가 번갈아 차지하였던 땅이다.

충청도 사투리는 한국의 다른 지방과는 완전히 다른데 이전의 백제였던 전라도와 신라였던 경상도 그리고 고구려가 있었던 북한의 사투리가 혼재되어서 형성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두 나라의 사투리를 연결시켜가면 한국의 삼국 시대에 백제가 차지하고 있던 전라도의 사투리가 일본의 어느 지방의 말과 대응될 수 있을 것이다
.

옛날 백제는 일본과 학문이나 문화적인 교류에 있어서 가장 활발하던 국가였다고 하지만 거기의 사투리와 대응되는 일본의 지방은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이 부드러워서 확연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태여 대응시키려고 한다면 말이 부드럽게 들리는 큐우슈우 지방의 사투리가 가장 그럴 듯하게 들린다.


그런데 일본 동경지방의 말은 한국의 서울지역의 말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고 사실 닮은 억양으로 들린다
.

아마도 두 거대도시의 특성상 사람들의 출입이 많아서 억양이 거의 일정한 말로 변질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본다면 앞으로는 이들의 말과 같이 억양에 특징이 없이 높낮이가 없는 말로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 지방의 사투리에 대응되는 일본 지방의 사투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시기 이전에는 일본의 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된 것이 드물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두 나라의 사투리가 서로 대응되는 것을 구태여 추측해 본다면 두 가지 방법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 하나는 일본이 한국처럼 초기에 각 지방별로 국가가 세워졌을 경우,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다.

이것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건국되었을 당시부터 언어가 존재하고 있었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 한반도에 있었던 삼국시대와 같은 시기에 언어가 있었다면 각 지방의 사투리로 정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 째는 외부에서 언어가 전파되었을 가능성이다
.

말하자면 일본 각 지방의 사투리는 외국의 다른 지방의 사투리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유입되어서 그 지방에 정착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칸사이 사투리라든가 후쿠이 사투리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지방의 억양으로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어가 일본 전국에서 똑 같이 사용되고 의미가 통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일본으로 유입된 언어는 한 나라에서 유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대이전에는 일본의 문화가 한국으로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고 볼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한반도에 있던 나라의 사람들이 일본의 각 지방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그 지방의 방언이 사용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 .

물론 옛날에 일본이 중국과 교역을 하거나 정부의 사신들이 오갔으므로 당연히 일본어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어순, 어법과 단어가 중국어보다 한국어와 더욱 가깝고 사투리마저 유사한 것으로 보면 한국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일본의 사투리들이 한국에서 전래되고 그 지방에서 발전되었다면 말과 문자는 서로 맞지 않았을 것이다
.

한반도에서도 한글이라는 지금의 한국어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를 나타낸 머리말에 의하면, 이전에는 한반도에서도 문자와 말이 서로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나라의 말이 중국의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우매한 백성들이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그 뜻을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문자를 만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한반도에서도 한글 이전에는 중국의 한자와는 다른 언어가 한반도에서 의사 전달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이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말하자면 한글이전에도 말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사용되었던 한글로 표현되기 이전의 말들은 한반도가 백제, 신라 그리고 고구려의 삼국시대 이전의 말이었을 것이다.

특히 신라시대에는 이두문자를 고안하여 소리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백제나 고구려에서도 문자로 한자를 사용하였을 것이지만 말은 한반도의 고유 언어를 사용한 것 같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 전체적으로 한국어로 모든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어순이나 억양이 닮은 것으로 판단한다면 일본어는 한국의 삼국 시대의 언어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언어가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역의 관계도 있을 수 있다고 본다면 언어가 닮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비슷할 것이고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도 유사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 지방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과 대응하는 사투리를 쓰는 일본 지방의 사람들의 성격은 서로 유사할 것이다
.

예를 들면 한국의 경상도 지방의 사투리와 유사한 억양으로 말을 하는 칸사이 지방 사람들의 성격은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겉으로 활달하고 의욕적이고 좋고 나쁜 것을 확실히 표현할 것이다.

한국의 충청도 사투리와 유사한 말을 사용하고 있는 후쿠이 지방 부근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은 충청도 사람들처럼 성격이 유순한 것처럼 느껴지고 좀 부족한 듯이 보이지만 실리는 전부 챙길 것이다.

그리고 전라도의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 지방은 역사적으로 생각한다면 나라 지방이 될 수 있지만 말로 유추해 본다면 큐우슈우 지방이 가까운 것처럼 생각된다. 만약에 큐우슈우가 이전의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면 지금의 전라도처럼 실리적이면서 낭만적이고 인심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의 건국신화에 나타난 것으로 유추해 보면 한반도 북쪽인 고구려인이 큐우슈우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

이 경우에는 그들의 기질인 강직하고 강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만약에 한반도의 삼국시대에 백제, 신라 그리고 고구려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정착하였다면 그 지역에서 각 나라의 사투리가 사용되었을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기질도 유사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는 두 나라의 언어를 연구한 것이 아니다
.

다만 언어가 두 나라 사람들의 동질화에 기여하는 조건이 되는지를 알아 본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고 일본에도 그들의 언어인 일본어가 있다.


두 나라 언어의 문자와 발음은 서로 다르지만 어순
, 억양, 구조와 내용이 같다면 사고와 감정도 닮아야만 할 것이다.

, 한국 지방의 사투리의 억양과 대응하는 일본지방의 사투리가 있다는 것은 그들의 사고와 감정이 유사하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두 나라 언어의 유사성은 두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되는데 하나의 조건을 충족시켜준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반도에 있는 금강산은 조선인들이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둘러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할 만큼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이다. 

금강산은 1 2천 개의 봉우리가 연달아 늘어서 있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보는 듯한 풍경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서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한번 다녀가고 싶다고 했다는 아름다운 산이다. 

현재 금강산은 북한 땅에 속해 있어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산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아름다운 금강산도 배가 불러야 비로소 아름다운 경치가 눈에 들어 오는 법이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 경이라는 한국 속담이 생겨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에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배가 고파서는 전투를 할 수 없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 같다. 

이들 속담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의식이 풍족해야 비로소 주위를 둘러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동질화되기 위해서는 개인 생활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동질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나라 사람들의 생활이 먹고 사는데 부족하지 않고 문화 생활을 즐기면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은 되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동질화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로 서로 생활 수준이 비슷한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한국인들의 생활수준도 많이 높아져있어서 일본인들의 그것과 비슷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인들의 개인생활이 일본인들보다 더 윤택할지 모른다.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이 급속히 높아짐에 따라서 두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되는데 없어서는 안될 가장 큰 조건을 충족해 주었다고 생각된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서 두 나라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상호 교류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생활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게 된 것은 반세기 전부터였다.

한국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박정희라고 하는 위대한 리더와 한국인들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1945 8 15을 기점으로 폐허가 된 국가의 토대 위에 경제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는 점에서는 똑 같은 상황이었다.

먼저 한국의 사정을 살펴 보면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되었을 때, 일본에 의한 강점기를 35년 간 겪은 탓에 나라는 이미 황폐해져 버렸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경영해 나갈 사람들 조차 없을 정도로 국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한반도는 두 나라로 분단되어서 남쪽은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북쪽은 북한이 들어서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반도가 독립한지 5년 후에는 북한의 침범으로 전 국토와 국민은 전쟁에 휘말리고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는 참혹한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한반도에서의 남과 북의 전쟁은 일천만 인이라고 하는 이산가족을 남긴 채로 휴전이 되었다. 

그 이후 한국과 북한의 대치상황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가끔은 휴전선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한반도의 전쟁은 국력이 쇠약한 병자에게 합병증이 생긴 것처럼 한국은 완전히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불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반도 전쟁이 끝난 다음에 한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서 국가와 국민들은 겨우 버텨나가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러서 거의 회생할 수 없는 나라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때의 상황을 지켜 본 외국인 기자들은 한국이 회복하는 것은 퇴비더미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도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한국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

아마도 수많은 전쟁을 겪어 온 민족이어서 고난 속에서도 유전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들이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상대대로 살아온 방법대로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는 어업 그리고 무역 등의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시기의 한국인들은 조선시대처럼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여서 다음 해에 보리가 익기 전에 이미 식량이 떨어지는 가정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이다.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산에 가서 나무 껍질이나 풀 뿌리를 구해와서 먹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때를 보리가 나오기 전에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고 하여 보리 고개라고 불렸다. 이러한 한국인의 상황은 1970년대가 들어서기까지 계속되었다.

한국은 한반도의 전쟁이 끝난 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폐허에서 기적처럼 경제를 일으켜서 국가다운 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퇴비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이 식량을 걱정하지 않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게 된 것은 한반도의 오천 년 역사 중에서 겨우 40여 년 전부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한편
, 일본인들도 종전 후에는 호타루노 하카라는 애니메이션이 사실에 근거해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일본은 폭격으로 산업시설들이 파괴되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시설들이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위에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이나 공장을 가동시킬 수 있는 기술자 그리고 인재들을 양성할 만한 학자들이 많이 생존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구심점인 천황이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본이 전쟁으로 인하여 산업시설이나 국토가 파괴되었다고는 하지만 경제를 복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는 남아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던 중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은 연합군의 군수 기지 역할을 하게 되어서 폐허가 된 산업을 빠른 시일 안에 복구시킬 수 있었다.

일본은 전쟁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기술에 더하여 미국의 것까지도 받아들여서 산업적으로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에 따라서 일본은1965년 한일 협정이 맺어질 당시에는 이미 선진국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 일본은 전쟁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났으며 일본인들의 생활도 종전 이전보다도 더욱 향상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중에도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

이것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시기에 한반도 내에 산업 시설을 거의 세우지 않았고 인재도 육성하지 않았던 것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반도가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되었지만 경제를 시작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게다가 해방 정부의 재정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산업을 시작할 자금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공장을 지었다고 해도 이것을 운영할만한 기술인력조차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에 한반도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한국이 경제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당연히 한국인들도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농촌이나 어촌에서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몰려들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도시, 특히 서울은 급속히 인구가 늘어나게 되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정부에 대해서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이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지내고 있던 중에
1961 5 16박정희 소장의 주도로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혁명 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6개의 혁명 공약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에 국가의 자립경제 재건에 총력을 집중하여 기아선상에 있는 민생고를 해결한다고 하는 조항이 있었다.

이 문구를 보면 그 당시에 한국인들은 먹고 사는 기본 생존권조차 확보되지 않은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 소장은 군사혁명에 성공한 후 1963년에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혁명공약을 실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비로소 한국은 국가의 주도로 산업다운 산업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현재와 같이 한국이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한 나라 중의 하나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에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경제 개발 5개년 계획박정희 대통령 집권시기에는 3차까지 실행되었고 한국 경제개발의 기본 골격이 되었던 것이다.

,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 정부가 직접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실시한 정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자금이었다.

한국이 경제 개발 계획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 한국의 국고는 거의 비어있는 데다가 너무 가난하였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돈을 빌려주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우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와 더불어 대일청구권 협정을 맺었다.

이로써 한반도가 해방된 후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기까지는 20여 년이 걸린 셈이다.

이 협정으로 한국과 일본은 국교가 정상화 되었고 한국은 유, 무상을 합쳐서 약8억 달러의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우선 산업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일 청구권 자금은 일본이 한반도를 35년 동안 강제로 점령했던 시기에 인명과 재산 등에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한 보상과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은 일본과 경제 협력 협정까지 맺어서 비로소 산업을 일으킬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이미 일본은 모든 분야에서 정상으로 복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외부의 요인과 함께 산업 기술의 연속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은 모든 조건에서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상태에서 일본보다 20년 뒤늦게 산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한국은 산업 자금으로 대일 청구권 자금을 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독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서 이에 대한 보증으로 젊은 남녀들을 광산과 간호원으로 독일에서 근무하게 하였다.

이것도 한국에 일자리가 거의 없었던 그 시기에는 대단한 인기였다고 하지만 국가로 보아서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였을 때 이들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연설을 한 내용을 보면 한국의 어려웠던 사정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인용해 보기로 한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 남의 나라 땅 밑에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광원 여러분, 간호원 여러분. 모국의 가족이나 고향 땅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로 생각되지만 개개인이 무엇 때문에 이 먼 이국에 찾아왔던가를 명심하여 조국의 명예를 걸고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남들과 같은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닦아 놓읍시다… 
여러분, 난 지금 몹시 부끄럽고 가슴 아픕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무엇을 했나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합니다. …

나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우리 후손만큼은 결코 이렇게 타국에 팔려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 정말 반드시….” 

이 후로는 눈물 때문에 연설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연설을 들으면서 모두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지금도 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의 추억담으로 종종 말들을 하고 있다.

그 당시 한국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은 어렵게 마련한 산업자금을 가지고 일본산업을 모델로 하여 공장들을 짓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일본과 맺은 경제협력 협정이었다
.

, 한국은 일본에 의해서 폐허가 되고 그 기술의 도움으로 산업개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산업개발의 초기에는 가발, 의류나 신발 같은 것을 생산하여 국내에서 소비하기보다 외국에 수출을 하여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리고 포항제철, 자동차나 조선과 같은 거대한 중공업까지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산업개발 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월남 전쟁이었다고 생각된다
.

한국은 미국측의 요구에 의해서1964년 월남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이것이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의 급료가 한국 내로 들어와서 시장 활성화에 사용되거나 산업자금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어서 1960년대는 산업국가로 되는데 가장 활발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그 후 한국에는 산업시설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이에 따라서 당연히 사회간접시설들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

특히 1970년에 개통된 서울과 부산간을 잇는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경제가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것을 상징하는듯하였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초기에는 고속도로에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때는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드물고 영업용 차들도 적었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경부 고속도로는 차선을 2배 이상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체가 상시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 한국이 얼마나 급성장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부터 비로소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서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다.


한국인들의 생활이 나아짐에 따라서 그들 집에는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전자 제품이라든가 자동차를 가지게 되었고 자녀들의 교육에도 집중을 하게 되었다
.

이 뿐만이 아니라 국민들은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세계에 관한 지식을 넓히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경제가 발전한 데에는 일본의 산업기술이나 경제협력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 

그러므로 한국 산업의 모델이 일본의 산업이었기 때문에 물품제조에 필요한 소재나 기술은 아직도 일본 산업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한국을 지배하는 형태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일본의 산업이나 기술이 한국의 경제라는 바닥이 마른 호수에 일방적으로 채워주는 것과 같은 형태이다.


한국의 산업이나 기술이 거의 일본화처럼 되어 있으므로 두 나라의 경제나 산업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질화되어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

그런데 한국인들이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현상이 오히려 개인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들의 생활 수준이 일본인들의 그것과 대등하게 되었기 때문에 동질화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유사시 보급물자 지원과 제한된 정보 교환을 하는 군사 협정을 맺자고 먼저 제의를 왔다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센까꾸 열도를 두고 중국과 충돌한 것과 한반도의 긴장감 때문에 일본 본토의 위협을 느끼고 제안한 것이라고 있다.

 

이것을 두고 역사의 입장에 이들은 일본이 다시 이전의 과오를 되풀이 있다는 의미로 반대를 하고 어떤 이들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면 일본과 군사 협정을 맺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들을 한다. 쪽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

 

그런데 동북아 지도를 놓고 보면 한국은 중국과 북한 그리고 멀리는 대만과 대치를 하고 있는 1전선에 위치해 있다.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2 전선에 놓여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오히려 한국이 일본에 군사협정을 요청해야 상황인데 오히려 일본이 먼저 문제를 들고 나왔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는 담장이 무너지는 것을 떠받쳐서 중국이나 북한의 위협이 일본에 미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이다. 만약에 한반도가 북한이나 중국의 손으로 들어간다면 일본은 킬로미터를 두고 적과 대치하고 러시아 그리고 대만과도 대치하는 1 전선이 되기 때문이다. .

 

그러면 일본은 대적하기 위해서 엄청난 군비를 지출할 밖에 없고 국가의 안보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일본은 미국과 호주 동맹관계를 맺고 있지만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서 한국과 군사 동맹이 절실하게 떠오르게 것이다.

 

한국과 일본 나라의 군사 협정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미국과 군사 동맹을 맺고 있는 구태여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을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2, 3중의 안전 장치를 필요가 있다.

 

이전의 일제 강점기만을 생각한다면 나라가 망해도 일본과의 군사 협정만은 된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대치국들과의 대결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미래에도 존립해야 한다면 일본과 군사협정은 필요할 것이다.

 

국제 관계는 언제나 냉정하여 자국의 이익을 위한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논리를 적용할 없다. 왜냐하면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시점에서 한국이 어떻게 살아 남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한다면 - 군사협정은 필요할 것이고 이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일본은 태풍의 눈이 멀리서 발생하는 것을 보고 그것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주님의숲 2011.01.08 21: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2011년도에는 좋은일만 생기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미국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 조정관인 게리 세이모어라는 사람은 [아무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 없고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이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하고 결과 사정거리내에 있다는 군사적인 면에서 비장의 카드를 쥐고 있다] 말했다고 한다.

 

말은 남북한의 대립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있는 말이다. 현재 남북한 대치 상황을 김정일 그들의 체제를 위협할 있는 전면전을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최종 목적이 한반도 통일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끊임없이 한국에 도발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은 전문가들이 흔히 말하는 국지전이 수도 있고 한국 내에서 혼란을 유도하여 붕괴되기를 바라는 것일 있다. 중에서 김정일 한국이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바랄 것이다.

 

북한이 특수전 군인을 20만명 이상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물론 국지전용일 있지만 한국내에서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들이 50% 이상 되어 혼란이 야기되면 그들을 지원할 부대일 가능성이 높다. 6.25 동란 때의 박헌영 빨치산 같은 것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이 통일을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의 북한 동조 세력은 10%~20% 정도로 예상된다.

 

이와 같다면 한국도 김정일 체제의 유지를 지탱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를 교란시켜서 붕괴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전처럼 지엽적인 사항만 가지고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김정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있는 지도부를 흔들라는 것이다. 

 

앞에서 김정일에게 북한에서 떠나라는 남북 정상회담을 하라고 했다. 이것이 먹혀 들지 않을 경우 김정일 그를 지지하고 있는 군부를 분리시켜서 김정일 영향력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 정권은 무너질 것이다. 얼토당토하지 않는 황당한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금전적인 지원과 붕괴 이후의 안전만 책임져 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것이 북한 탈출자들의 말들로부터 짐작할 있다.

 

다행히 한국에는 뇌물을 바치는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을 활용한다면 북한 지도층에게 뇌물 바치는 것은 식은 먹기일 것이다. 이것은 북한을 중국에 넘겨주지 않고 통일을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해는 북한이 천안함을 격침시키고 연이어 연평도 포격으로 한국을 공격하여왔다. 이에 한국은 북한에 대해서 대응 차원으로 포 사격 훈련을 하여 한반도가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감돌았던 해였다.

 

이에 중국은 시종일관 6자 회담을 들고 나왔는데 그 당시 한국으로서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중국은 북한이 한국에 도발한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지만 한반도에서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6자 회담을 들고 나왔을 것이다.

 

한국과 북한 간의 긴장감이 어느 정도 해소된 지금,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등도 이제는 한국과 북한이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대화의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북한도 신년사에서 남북대결 해소를 들고 나왔다.   

 

의례껏 북한은 일을 저질러 놓고는 평화 쪽으로 선회한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북한의 생활 사정이 김정일 체제 유지를 위험하게 하는 수준에 다다른 것 같다. 그러므로 북한은 남북 회담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 중국을 비롯한 4대 강국은 6자 회담을 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한국과 북한 관계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보면 지금 한국은 분하게 생각되지만 한국과 북한 정상이 만나야 할 시기로 보인다. 그리고는 6자 회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만약 6자 회담을 먼저 한다면 아무래도 한반도에 강대국들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회담은 상대가 있는 것이어서 북한이 지금은 남북대결 해소를 들고 나왔다 해도 어떤 행동을 취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북한 쪽에서 먼저 회담을 제안해 오도록 유도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정상이 회담이 이루어질 때 이전에 한국이 북한에 했던 것처럼 회담 선수금이나 물질 선물을 한다면 회담은 하나 마나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과 북한의 정상 회담이 열린다면 한국은 김정일에게 북한에서 손을 놓고 그의 일가들을 데리고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일생을 편안하게 보내라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대세가 기울었기 때문에 그 길만이 루마니아의 챠우세스쿠와 같은 비극을 피하는 길이고 북한 땅을 한반도에 남겨 놓는 업적을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한국과 북한 정상회담을 할 경우, 김정일이 북한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연평도 포격 훈련을 두고 보면 한국의 우군과 반대 측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측의 입장을 두둔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었고 북한측의 입장을 두둔한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냉전시대가 돌아 느낌이 정도이다. 지금 한반도 상황이 구한말과 유사하다고 생각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결국 한반도 상황을 이용해서 강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이 초래했다고 보아야 하고 옳고 그름이라는 명분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북한의 편에 있는 중국의 행동이 가관도 아니다. 이전에 중국은 절대 세계 리더가 만한 능력이 없다고 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러한 행태가 나타났다. 이러한 중국의 행태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무력 증강에 힘입은 바가 크다.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것은 마치 속국을 대하듯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을 겨냥하기보다는 뒤에 있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 어린아이 손목을 비틀고 이만큼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은 중국에 변변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이 외교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행동을 경우에는 강력히 항의를 하던가 아니면 협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어선의 한국 영해에 불법 조업을 하고 이를 단속하던 해양 경찰이 그들에 얻어맞았는데 반대로 중국 측이 항의를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되풀이 해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번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서 중국의 불합리한 행동에 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무력이 무서워서인지 아니면 중국으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이 많아서 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의 무력을 무서워한다면 언제나 끌려 다닐 밖에 없다. 그들이 무력이 막강하다고 해서 일시에 전군을 투입해서 한반도를 공격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과 베트남간에 국경을 사이에 두고 전쟁이 벌어졌을 유리한 쪽은 없었다. 고구려와 나라나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을 때는 고구려 군의 배였던 나라군이나 당나라 군이 참패를 하였다.  이것은 중국이 수많은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시에 전투에 투입할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국과 중국이 무력 충돌을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힘을 두려워하여 말을 못한다면 중국은 점점 한국을 모든 면에서 압박해 것이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습성이다. 가만히 눈치 보다가 약하다고 생각되면 모든 것을 빼앗으려는 심뽀말이다. 지금 중국은 한국의 팔을 빈번히 비틀어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들 힘을 믿고 중국에 당당히 임해야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버튼 1 2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AURAKY의 월드리딩! 세상을 요리조리 보고 쓰는 살아있는 경험의 블로그 입니다.
AURAKY








free counters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믹시


달력

 « |  » 2020.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