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의 미래에 관해서 객관적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래야 두 나라를 이해하는데 편견을 가지지 않고 감성적이 아니라 이성적으

로 바라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에서 보듯이 한-일 두 나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미워하다가

친해지고 친해진 듯 하다가는 다시 미워하는 상황이 되풀이 된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부터 흘러 온 줄

기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마치 강이 바다까지 흘러가는 시작이 발원지이기 때문에 강을 알려면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미래는 제목에서 보듯이 인간을 기준으로 했으므로 국

가 단위의
역사가 아니라 두 나라 사람들의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곳의 흐름

을 살펴보고 
미래 관계를 유추해 낸 것이다.

딱딱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읽어 주시고 계셔서 블로거로서 대

단히 기쁜
마음이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적어도 이성적으로 일본인들을 올바로 이해하여 감정

치우쳐서 그들에 대한 판단을 흐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연재했던 것에 관하여 약간의 위로를 삼고 싶다.

끝으로 한국인과 일본인의 미래의 연재 블로그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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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두 나라사람들 사이에 동질화된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우선 한국인들에게 일본인들과 동질화될 것이라고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항의를 해 댈 것이다.

이번에는 일본인들에게 같은 말을 하면 그들도 바보 같은 이야기는 그만두라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서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된 것은 이전의 불행한 역사의 몇몇 사실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된다
.

특히 근대에 들어와서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사실 때문에 두 나라사람들은 상대국에 대해서 다른 시야를 가지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두 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형제들은 서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화해를 한다.

그러나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러한 것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 나라 관계도 적대시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이내 화평하게 되는 시기도 있었던 것이다.


요즈음 두 나라의 관계는 누가 보아도 화평한 시기라고 생각되지만 두 나라 사람들의 관계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서 우호적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

, 두 나라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질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앞에서 인용한
타임스의 앤드루 새먼(Andrew Salmon) 서울 특파원의 기사로부터 나라사람들의 동질화에 관련된 부분을 다시 한번 인용해 보기로 하겠다.

그는 현대의 일본은 오히려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나는 수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연대감을 느끼는 심정을 이해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라이프스타일, 인생경험, 가치체계와 문화에 있어서 한국은 북한보다 일본 쪽에 훨씬 가깝다라고 썼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아닌 3 인의 관점임에도 불구하고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두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있어서 동질화가 급속히 진행되게 것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나라사람들이 생활상으로 거의 비슷하게 된데다가 정보 통신과 교통과 같은 매체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것들이 동질화되는 데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나라에 원래 형성되어 있었던 기본요소나 조건과 같은 근원이 있어야만 한다,

여기서 기본요소라고 하는 것은 나라사람들이 동일한 정신세계의 영역에 있는 것을 말하며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나 관습 등이 교류에 의해서 닮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나라사람들의 동질화를 방해하는 인자로서는 마음의 장벽, 정치가, 국수주의자 그리고 편향된 사고나 사상을 가르치는 교육들을 수가 있다.

이러한 동질화의 방해인자들은 나라 간에 있어서 정보전달이나 인적 교류에 의해서 문화나 관습 등이 상대국으로 전달되어서 별로 영향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나라사람들 중에서 겉으로는 동질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원동력이 돌아가고 있는 동질화된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
나라사람들은 빈번하게 상대국을 방문하여 문화나 생활풍습 그리고 관습을 보고 자기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라 사이에 인적 교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나 가요와 같은 대중문화가 믹서로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국인들보다 일본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같지만 일본인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국에 관해서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게 되자 일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현대 일본의 경제와 산업은 세계에서 상위에 있다고 하지만 대신에 사람들은 인간성의 상실이라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메마른 사회가 되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일본인들은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회 속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내던져서 외톨이처럼 생각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일본인들 중에서 일부는 아직도 인간이 사는 냄새가 나는 한국의 문화나 생활 풍습을 알게 되어서 급속하게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있다.


그들은
마음의 유토피아를 찾아가듯이 한국을 방문하게 되고 고향과 같은 포근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특히 그러한 일본인들 중에는 바쁜 생활로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여인들이 많은 같다.

그녀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며칠간 지낸 ,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다시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녀들에게 있어서는 한국은 외국이 아니라 자기네 나라처럼 느끼게 되어서 동질화되어 있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있다.

, 한국인들은 1960 이후부터 한국의 텔레비전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서 일본의 문화나 생활 풍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일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 속에는 일본 것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여행이나 쇼핑을 위해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보면 있는 일이다.

그들은 일본을 경험했기 때문에 일본의 거리를 걷는다고 해도 어색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본인들을 만나는 일이 있어도 이전처럼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생각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한국인이 한국인을 거리에서 만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에 한국인이 일본인을 만나면 도깨비를 보듯 하던 시대에 비하면 대단한 변화이다.

지금은 일본을 왕래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이미 일본은 막연한 나라는 아닌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인들처럼 자연스럽게 동질화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재 나라 사이를 왕래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년에 수백만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는 더욱 늘어나서 마치 이웃집으로 놀러 가는 것처럼 되어서 상대국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익숙해질 것이다.

결국 나라사람들을 동질화시키는 것은 대중문화를 통해서 형성된 인적 교류라고 있다.


앞에서
기술하였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기질은 같지만 한국인은 외부로 지향하고 일본인은 내부로 지향한다고 했다.

나라사람들의 기질은 동질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균형이 되는 곳에서 중심을 잡을 것이다.

, 인적 교류에 의해서 한국인은 일본인과 같아지기 위해서 내부로 지향할 것이고 반대로 일본인의 기질은 외부로 지향하게 되어서 마침내는 어느 점에서 균형을 유지할 것이다.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점이 처음에 한국인과 일본인이 가지고 있었던 동질성이고 거기로 돌아가는 것이 동질화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동질화가 이루어진다면 서로 마음의 벽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부산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거리에서 만난다고 해도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로서 동경에 살고 있는 사람이 오오사카의 거리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인들을 만나도 같은 느낌을 갖게 것이다.

이와 같이 느끼는 것은 사람들 간에 무의식 중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있다.


나라의 동질화에 관한 예로서 한국의 조선일보에2011 01 17,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의미 있는 기사가 있어서 인용해보기로 한다.

기사는 한반도 연구를 40 동안이나 오코노기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대 교수를 인터뷰한 것이다.

그는 기자가 한국과 일본은 가까워질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던 것이다.

, “일본과 한국은 산업구조가 거의 비슷하다.

철강이나 조선과 같은 중공업을 기본으로 하여 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첨단제품에 경쟁력이 있다.

국가 목표도 비슷하다.

목표가 같고 수단이 같으면 이익을 공유할 있다.

물론 역사와 문화는 다르다.

하지만 세계적 시야로 보면 쌍둥이 같은 나라다라고 하였다.

오코노기 교수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바라 것인데도 쌍둥이 같은 나라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라사람들은 문화, 관습이나 종교가 유사한데다가 정치나 경제의 체계가 같은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동질화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앞으로는 과학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서 두 나라 사이에서 정보전달이나 인적 교류가 빈번하게 되어서 동질화는 완성되고 유지되어 갈 것이다
.

두 나라사람들 간에 동질화된 후에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것 같이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를 지배한다는 것은 짐을 등에 지고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국경의 형태는 집에 담장이 있는 것처럼 명목상 유지될 뿐이고 두 나라사람들은 부담감 없이 교류를 할 것이다
.

그러므로 두 나라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 수 많은 나라가 있는 중에서 서로 위로를 주고 받으면서 때로는 부딪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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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한국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동질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대중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라 간에 있어서 대중문화는 1900년대에는 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일방적으로 흘러 들어와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있다. 그러나 시기에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만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나라사람들 사이에 동질화되는 통로가 막혀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시기에 대중문화가 방향으로 흘렀다고 해도 현재에 와서 나라사람들이 서로 문화와 정서를 공유할 있는 토대를 만들어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특히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를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대중문화 중의 축의 하나인 대중 가요도 처음에는 방향으로 흘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 시기의 모든 문화의 흐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래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기 이전에 이미 전통적인 노래들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현대의 대중가요로 전환된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것은 한국의 대중가요와 일본의 것이 유사한 것이나 지금도 일본 가요들을 카피해서 한국가요로 둔갑시켜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자주 불리어지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가요는 설령 일본의 엔카의 형태를 빌려왔다 하더라도 이미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하였을 때부터 불려지기 시작한 같다.

, 한국의 대중가요는 일본 엔카의 형태를 빌렸지만 가사와 곡은 한국의 정서와 감정의 요소를 담고 있어서 전혀 다른 가요가 되었다고 있다.

오히려 최근에 이르러서 한국의 대중가요는 일본의 특색을 포함한 것들이 많은 것처럼 생각된다.


한국에서
대중가요가 불리어지던 초기에는 자연을 주요 소재로 하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남녀간의 사랑이나 이별을 소재로 노래들이 주류가 되어서 내용에 있어서는 일본의 것과 유사하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가요가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면 한국과 일본의 대중 가요가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나라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라사람들이 대중가요에 의해서 동질성을 느끼게 것은 대중문화의 교류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에 들어와서부터일 것이다.

근대 이후, 한국인들은 일본의 엔카나 다른 노래가 한국의 가요로 것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일본의 정서에 동화되어 있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한국의 대중가요를 들어 기회는 거의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나라 사이에 대중문화의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한국의 가요가 일본에 소개되는 기회를 얻지 못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나라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거의 차이가 없게 되었고 대중문화의 활발한 교류에 의해서 비로소 일본인들에게 한국의 가요도 들리기 시작하였을 것이다. 

, 한국의 가수들이 한국의 가요를 일본에서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한국의 가요를 일본어로 부른다고 해도 정서를 전달하는 데는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대중가요가 최초로 일본에 소개된 것은 아마도 1976년에 한국의 가수인 이성애가 부른 가슴 아프게라고 생각된다.

그녀는 일본에서 노래를 일본어로 불러서 한국의 대중가요를 알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음악평론가들은 이성애의 노래를 들은 엔카의 원류를 이성애에게서 찾았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 가요의 원류가 같고 나라 사람들이 가요에서 받아들이는 느낌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가요인 가슴 아프게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지게 것은 속에 엔카의 요소가 들어있어서 일본인들의 귀에 익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모든 대중가요가 가슴 아프게처럼 일본인들이 공감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가요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일본인들에게는 엔카처럼 절제된 한국의 대중가요만이 받아들여지는 같다.

분명히 한국과 일본 나라의 대중가요는 형태나 정서는 같아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다.

, ‘가슴 아프게처럼 일본의 엔카를 닮은 같은 노래도 있는가 하면 한국의 전통 민요를 이은 같은 노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전통민요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요의 특징은 대개 밖으로 소리를 내질러서 속을 비우는 느낌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대중가수들은 대개 소리를 내지르는 듯이 부르는 같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엔카는 소리를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맑고 고운 소리로 노래를 하는 같다.

소리는 옛날 한국의 궁중에서 연주하였던 악기가 절제되고 조용한 소리를 내는 것과 닮아있는 같다.

때문에 가슴 아프게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국의 가수들이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국인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대중가수들은 일본에서 성공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특성이 들어있는 노래는 거부감이 느껴졌던 같다. 이것을 보면 한국인들은 일본의 엔카 중에서 한국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일본인들도 한국의 노래 중에서 엔카의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같다.

그리고 나라사람들은 극단에 있는 노래들은 좋아하지 않는 같다.

, 한국인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엔카를 좋아하지 않고 일본인들도 한국의 전통적인 가요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라사람들이 극단에 있는 나라의 가요 이외에는 서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가 것이다.


한편
, 이성애가 한국의 가요를 일본에 처음 소개한 이후, 한국에서 유명했던 가수들이 일본에서 노래할 기회가 생겨났다.

중에 하나가 조용필이고 그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 한국에도 훌륭한 가수와 가요가 있다고 하는 것을 일본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있다. 예외 없이 노래도 가슴 아프게 마찬가지로 절제가 있으면서 듣는 사람의 마음에 호소하는 듯한 요소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나라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된다.


이와는
달리 한국 최고의 가수들이 한국의 전통에 바탕을 노래를 부르면 일본인들은 별로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에는 시원하고 기분이 풀리는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나라사람들이 한국의 대중가요나 일본의 엔카를 들을 느낌이 다른 것은 앞에서도 번이나 기술한 것처럼 한국인의 외부지향성과 일본인의 내부지향성의 차이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엔카를 들으면서 의미를 모르면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밖으로 향하여 시원하게 노래를 불렀으면 속이 후련할 같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이라도 엔카에 익숙해지면 공감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인들도 한국의 대중가요를 이해한다면 그것에 공감을 것이다.

,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의 노래에 관해서 느끼고 있는 감정은 유사하다는 것이다.

.
그런데 한국의 대중가요는 소리를 내지름으로 해서 사람의 가슴에 맺힌 한이나 설음을 풀어내려고 하지만 엔까는 모든 것을 가슴속에 응축시켜서 녹여버리는 같은 느낌으로 노래를 부르는 같다.

그러므로 노래에 한과 설음을 담아내는 데는 마찬가지이므로 상대국의 대중가요에 쉽게 공감하게 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가수들은 많이 있지만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이후에는 진정한 한국의 가요가 일본에 소개된 것은 거의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요즈음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가수들은 철저히 사업적으로 일본의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므로 정확히 말하면 일본의 가수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동질화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기술한 것과 같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상대국의 노래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은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정서가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의 노래에 들어 있는 사랑과 이별과 같은 요소를 느끼는 것은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의 대중가요는 나라사람들의 정서가 같다는 것을 확인시켜줌으로써 동질화시키는 믹서로서 작용을 하는 것이다.

최근 동안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동질성에 미치고 있는 드라마나 대중 가요의 영향은 지난 역사의 교류에서 이루어진 보다 훨씬 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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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과 일본인이 동질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할 것이다.

, 기본이 되는 공통 요소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하고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져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생활의 습관도 닮아야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자연히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강제로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관한 예로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한 시기에 조선인들을 강제로 일본인화하려던 정책이 실패로 끝난 것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질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매개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들 매개체는 앞에서 기술한 것과 같이 텔레비전, 퍼스널 컴퓨터 그리고 등이고 여기에 더하여 물질도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퍼스널 컴퓨터는 상대국의 문화나 정서를 전달해 주며 책은 사고나 사상을 전달해 주는 것에 의해서 이질성이 감소하게 되어 동질성을 나타나게 한다.


이에
대해서 물질 쪽은 생활 속에서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의해서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있다.

이들 물질들은 식품, 전자제품 그리고 화장품 등과 같은 산업제품들이다.

우선 나라에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식품의 이동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기본식품처럼 유사성을 갖고 있는 예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나라의 가정에서 사용되어 왔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공유된 후에

각각 자기 나라 안에서만 발달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와
같이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에는 식품문화는 더욱 빠르게 이동되어서 동안 나라에서 각각 발달되어온 기본 음식조차도 교류가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의 김치나 불고기 등과 같은 음식을 일본인들이 먹기 시작한 대해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단무지나 장아찌 등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나라 사람들이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치므로 동질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식품문화에서 산업 규모로 생산되고 있는 인스턴트 식품 류는 나라의 식품문화의 교류에서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같다.


여기서
불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인스턴트 식품 류의 기술이 한국 쪽으로만 흘러 들어와서 한국인의 입맛을 일본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 일본의 인스턴트 식품 류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그것을 카피하여 마치 한국의 식품처럼 소비자들에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식품회사들이 인스턴트 식품을 개발할 때는 당연히 일본인의 맛에 맞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카피한 인스턴트 식품을 먹음으로써 일본인의 맛에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는 것이 된다.

이에 관한 재미있는 얘기로서 한국의 유명 식품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스낵 제품으로 수명도 상당히 길고 지금도 팔리고 있는 것이 있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그것이 한국의 스낵인 알고 먹어왔는데 일본 제품을 카피한 것이라고 밝혀지자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고 까지 했다는 것이다.

대체로 한국에서 팔리고 있는 인스턴트 식품들이 거의 일본의 카피 제품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는 본래 스낵이나 과자로 개발할 있는 밑바탕이 되는 기술이 없었다고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옛날부터 한국에서는 궁중이나 민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수많은 과자와 떡들이 있다.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개발할 의욕만 있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는 과자나 종류가 상당히 발달해 있지만 제조과정이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요구되므로 좀처럼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다.

때문에 한국 전통의 과자나 종류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스턴트 식품에 밀려서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한국 전통 과자나 떡을 맛보기 위해서 서울에서는 종로의 낙원 상가의 군대의 떡집이나 5 마다 시골 장이 들어서는 읍내 같은 곳을 찾아가야 형편이다.

한국의 사회에서 전통 과자나 떡들이 사라져 가는 것은 아쉬운 일임에 틀림없다.

결국 한국인의 입맛은 전통의 것을 소홀히 탓에 이상한 인스턴트 식품의 맛에 점령되어 버렸다고 있다.


한편
, 일본의 경우는 한국과 사정이 다른 같이 생각된다. 

, 일본에서는 전통 과자나 등은 지방에 따라서 특산물로서 독특한 형태로 유지되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쿄토의 쇼오고잉(聖護院) 떡인 야쯔바시() 오묘한 맛은 세대에 걸쳐서 개발하지 않고는 도저히 만들어 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으로 있는 것처럼 일본의 전통 과자나 종류 등은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보존되어 왔으며 오늘 인스턴트 식품을 포함하여 일본의 식품문화를 꽃피우는 근원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 일본 전통의 과자나 종류 등은 인스턴트 식품과는 다른 경로로 발달되어 왔을 것이지만 여러 가지 식품 류에서 일본의 오묘한 맛을 만들어 내게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현재 한국에서 인스턴트 식품만이 사회에 퍼져있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한국의
식품회사가 일본의 인스턴트 식품과 같은 카피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함으로 해서 역설적이게도 한국인의 입맛을 일본에 맞추어 주는 결과를 가져 왔다.

현재 한국에서 일본의 공장식품을 카피하고 있는 것은 인스턴트 식품뿐만 아니라 정말 희한한 일이지만 대기업에서 음료수까지도 로열티를 지불해 가면서 판매한다고 하는 웃지 못할 현실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앞에서 차례에 걸쳐서 기술한 것처럼 식품도 문화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 한국 식품회사들은 일본에서 팔리고 있는 인스턴트 식품이라면 한국에서도 팔린다는 것을 사업적인 감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일본 맛을 카피한 인스턴트 식품이나 음료수까지도 한국의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일본인들이 쿠다라나이(くだらない, 백제 것이 아니므로 하찮다) 라고 것이 지금은 한국인들이 니혼나이(日本ない, 일본 것이 아니면 하찮다)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식품문화의
이동과 같은 예로서는 조선시대에 도자기의 기술이 일본 쪽으로 흘러 들어 가서 생활용품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있다.

당시 일본에 의해서 도공들이 강제로 붙잡혀가서 직접 제품을 생산한 것은 지금 식품문화의 이동과는 다르지만 그들에 의해서 도자기가 조선과 일본에서 같이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인스턴트 식품이나 음료수 등과 같은 것을 한국의 식품회사들이 생산하여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과 닮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한 국가이면서 동질화될 있는 기본 요소나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 사람들이라면 서로 닮아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 일본의 전자제품이나 화장품 등은 인스턴트 식품이나 음료수 등과는 달리 일본제품이 수입되어서 한국의 시장에서 한국제품과 같이 진열되어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그리고 유럽 등의 시장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같이 판매되고 있어도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가 한창 성장 중일 때에는 외국 제품들이 상점에 진열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것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이나 화장품들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외국제품의 판매를 규제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정부가 산업에 자금을 투입하기 위하여 국민들이 저축을 하도록 유도하였든 아니면 외화의 유출을 막는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일본의 전자제품인 라디오 그리고 선풍기 등을 구입하여 사용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1960년대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를 이용하여 일본으로부터 전자제품을 몰래 들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일본의 전자제품들은 한국의 전자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 경쟁자 없이 한국인들에게 팔려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들어서서 한국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됨에 따라서 한국에서 만들어진 전자 제품들도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였다.

때부터 한국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전자제품을 이전의 부자들처럼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재
한국의 삼성이나 LG 등의 회사가 생산한 전자제품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정도가 되었다.

한국의 전자제품이 이와 같이 되기까지는 불과 30~40년에 걸쳐서 이룩된 것이다. 지금 한국의 전자제품시장에서는 주로 한국의 전자제품과 일본의 것이 경쟁을 하게 되었다.

나라의 전자제품만이 경쟁을 하는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 것은 이상하게도 미국이나 유럽의 전자제품들은 한국의 전자제품시장에서 별로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전자제품 디자인이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지 않고 품질에 있어서도 일본 것에 비해서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가장 원인으로서는 한국인들이 오랫동안에 걸쳐서 일본의 전자제품을 사용하여 왔기 때문에 디자인에 친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품질도 우수하다고 하는 것이 두뇌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나라가 지리적으로 가까우므로 제품 정보를 얻기가 쉽고 모든 비용도 다른 국가에 비해서 유리하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한국 전자제품시장에서는 한국의 전자제품과 일본의 것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한국인들이 전자제품을 구입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중에서 제품의 사양이 비슷하고 가격에서 차이가 없다면 일본제품을 선택하게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일본의 전자제품을 사용해 경험으로부터 믿어도 된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의 습관은 무서운 것이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 한국인들도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 애국심이나 친일이라는 논리는 필요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전자제품은 구미의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어떤 제품들은 외국의 것들보다 가격이 비싼 것들도 있다.

이것은 한국의 전자제품도 디자인이나 품질 면에서 우수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전자제품은 일본의 전자상가에도 진열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전자제품이 한국 시장에서 팔리는 것처럼 한국의 것이 일본에서도 팔릴 것인가 하는 데는 의문을 가질 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일본 전자제품에 친숙해진 대해서 일본인들은 한국제품의 디자인에 낯설 것이고 품질도 아직 의문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물질의 이동은 이미 그것에 친숙해진 곳으로 일어나는 같다.


한편
일본의 화장품도 한국의 시장에서 전자제품과 같은 경로를 거친다.

한국에서의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는 한국 화장품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프랑스의 것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 화장품의 가격이 프랑스와 같은 외국제품들과 비슷하다.

이것은 일본 화장품도 다른 일본의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에게 친숙해져 있는데다가 얼굴에 맞는다는 인식도 들어있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장품의 효과는 차이는 없지만 한국인들이 일본의 화장품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선입관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화장품은 한국의 것이 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한국인들의 감각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일본 화장품은 프랑스와 같은 나라의 것과 경쟁을 수가 있다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도 크고 작은 화장품 회사가 있고 이제 겨우 한국시장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없다.

만약 한국의 화장품이 일본시장에 진출하였을 경우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있는지는 없다.

이와 같은 것이 산업에 있어서 뒤쫓아가는 자의 슬픔인지도 모른다.
물질이동에
관해서 기술한 것은 주로 나라 사이에서 크게 이동되고 있는 식품이나 전자제품 그리고 화장품의 예이지만 다른 일본제품도 한국의 시장에 진출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근대이전의 물질이동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되었을 것이지만 불과 100 년이 되는 기간 안에 이동이 되어 버렸다고 있다.

물질이 이동하는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과 함께 문화나 풍습 같은 것이 제품 속에 포함되어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 한국인들이 일본 제품을 구입하면서 일본을 머리에 떠올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제품을 구입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작용을 것이다.


나라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물질이동에 따른 의식의 작용은 이전에는 한국으로 흘러갔다면 현대에는 일본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제품이 한국시장에서 팔린다고 해서 의식에서는 일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이동에 따른 의식에 있어서 이미 나라사람들은 동질이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물질이동은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있을 것이다.  





Posted by AURA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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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자의 의도에 따라서 피교육자들에게 동질성이나 이질성을 갖도록 가르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은 광복 후에 피교육자들에게 나라의 이질성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가르쳐왔다고 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이질교육은 앞으로도 년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교육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35년간 강제로 점령했었기 때문에 피교육자들에게 상대국에 대해서 더욱 많은 이질성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있다.


나라에 있어서 피교육자에게 이질성을 갖게 하는 교육은 가정과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가정에서의 이질성 교육은 가정의 풍습이나 생활 등에 따라서 생겨날 것이다. 이것은 가정의 고유한 것이므로 국내에서도 서로 이질성을 보이지만 국가 전체로서는 동질성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라에 있어서도 국내에서는 고유한 동질성으로 나타나지만 나라 간에서는 이질성을 보이므로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에 대한 동질성 혹은 이질성은 개인의 인성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될 것이다.

개인의 인성이라고 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며 가정과 학교 교육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

말하자면 가정과 학교의 교육은 개인의 인성을 완성시키고 나아가서는 국민의 성향까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의 가정이나 학교의 교육을 살펴보면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에 대하여 동질감이나 이질감을 갖게 되는 원인을 있을 것이다.


우선
가정은 개인의 인성을 키워 주는 최초의 교육장소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가정교육은 조선시대까지는 주로 인간의 도리를 목표로 하여 가르친 같다.

시대에는 주로 농업이나 어업 그리고 상업 등에 종사하였을 것이므로 대개 힘이 강한 아버지가 외부의 일을 하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일반가정의 살아가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고 법으로 생각되어서 엄한 존재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머니들은 자식들과 함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아버지보다는 많았을 것이므로 더욱 친밀하고 인자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까지나 마음의 고향으로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속담에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닮아간다 말이 있다.

이것은 부모의 모든 행동이 아이들의 인성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가정교육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의 인생 교과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인성교육은 조선시대에는 가정과 더불어 마을마다 서당이 있어서 인성을 완성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있다. 

거기에는 문자를 아는 선생이랄 있는 노인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인성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아이들이 서당에 입학하는 나이는 대개 주위의 사물을 구별할 나이가 되었을 때이다.

아이들은 서당에 들어가서 우선 천자문을 배우고 , 어린아이들의 윤리 교과서를 배우고 나아가서 어려운 동양의 철학인 사서삼경까지 배우게 되어서 단계적으로 인의예지신에 관한 윤리교육을 받았다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지금과 같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도리에 관한 것이었다고 있다.

따라서 이것도 엄격하게 본다면 가정교육의 연장이라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인성이 완성된 아이들은 평생 인륜에서 벗어난 행동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 들어와서 한국이 갑자기 산업사회로 들어서게 되자 교육도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대신에 밥을 벌어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게다가 현대의 아버지들은 직장일로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거의 영향을 끼칠 수가 없게 되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주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영향을 받으면서 자랄 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정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어머니 몫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받는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현대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기둥이 아니라 그저 돈을 토해내는 현금입출금기정도로 보여지고 있는 같다.

현대 한국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어머니들이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들의 특유한 경쟁심이 작용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하려고 공부라면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의 생활이 아이의 공부에 맞추어져 있어서 가정의 규칙은 아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이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 있으므로 어머니 이외에는 가족 누구라도 아이의 못된 행동을 고쳐주려는 것은 상상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조선시대부터 교육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이들의 교육에 힘을 기울인다.

특히,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부족하여 학원까지 보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을 하여도 관여하지 않고는 불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유치원 교육도 가정교육을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성의 형성도 가정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성은 어머니만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어 것이므로 절반의 인성 그것도 아이의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것이 형성될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의 일에 관여하려는 경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이것은 요즈음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 일이 부모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과 같이 하는 수가 많다.

이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생각인지는 없지만 어쨌든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관여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요즈음 한국의 가정교육은 이전에 비하여 변형되어 버려서 아이들의 인성은 자기의 것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불안한 인성이 형성되면 학교의 교육을 받게 사물에 대해서 생각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언제나 교육자가 가르치는 것만 받아들일 것은 확실하다.

위에 사물에 대한 분별력도 약하게 되어서 학교의 교육에서 교육자가 이상한 사상을 전달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사물에 관해서 편견을 갖게 되고 상대자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외골수 국수주의자가 되든가 희한한 사상을 갖는 사회 속의 이단아로 가능성이 크다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교육이 인성을 키우는 것에서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한편,
일본의 가정교육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엄한 아버지가 가정의 중심 기둥으로 버티고 있었던 같다.

이것은 일본의 아이들이 번개, 지진과 함께 3 무서운 중의 하나를 아버지라고 하는 것으로 있다.

그러나 요즈음 일본의 아이들도 이제는 아버지를 귀신처럼 무서워하지는 않는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주먹다툼을 벌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일본의 아버지들도 한국의 아버지들처럼 가정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은 잃어버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도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만은 어머니가 모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일본의 어머니들은 한국의 어머니들과는 달리 아이들을 공부 쪽으로만 몰아붙이지는 않는 같다.

물론 그녀들도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한국의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몇몇 어머니들을 통해서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겉으로 보기에 자녀를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나라 어머니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부모의 모든 것을 바쳐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있는 같았는데 일본의 어머니들은 그래도 공부에 관한 아이들에게 많이 맡겨두는 같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가정교육의 방법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도 다르게 길러져서 나라 사이에 이질감이 생겨나게 것이다.

말하자면 나라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이미 이질감은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나라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모습에서 확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