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린이는 대개 10시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었고 우선 가게로 들렸다가 가게 문을 닫으면 나와 같이 아파트로 돌아왔다.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봐서 가게로 오지 말라고 해도 듣지를 않는 것이었다.

혜린이가 가게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 부끄럽게 친구를 가게로 데리고 오냐?”

괜찮어. 아빠. 만약에 우리가 가게를 한다고 우습게 보는 놈이라면 말도 섞지. 그런 애가 아냐.”

걔네 집은 한다니?”

아버지가 공무원이라나 .”

그래?”

날은 그렇게 하고 말았지만 결국에는 아이가 나중에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혜린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말만하면 누구나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남자친구는 방위 근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혜린이는 월급을 타서는 고스란히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혜린이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가게만 해서도 먹고 있으니까 돈은 저금해두었다가 네가 필요할 .”

아냐, 아빠 이제 가게 그만 두라고 가져다 주는 거야. 앞으로 내가 벌어서 아빠 .”

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의 나이 아직50 중반이다. 벌써 일을 손에서 놓으면 어떡해? 그러니 아직은 걱정 말고 돈은 저금을 . 나중에 내가 움직일 없으면 조금 나누어 다오.”

그건 걱정 . 아빠. 걔한테 내가 그랬어. 나는 아빠하고 살아야 한다고 그랬거든. 애도 그렇게 한다고 했고 부모도 허락했다던데?”


그건 내가 싫다.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 것이다. 때문에 너희들의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돈이 없으면 먹고 살만큼만 달라는 거다. 알겄지?”

그런데 아빠는 나를 위해서 재혼도 안하고 아빠의 인생을 낭비 했잖어? 그만큼 내가 보상해주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아빠의 인생을 내가 잡아먹은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

이것아! 내가 너를 키운 것은 아빠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고, 아빠가 재혼을 하지 않은 것은 엄마가 아빠의 마음에 살고 있기 때문이야. 알겄냐?”

나도 그래. 자식이 아빠를 먹여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야.”

됐네. 그건 그렇고 걔하고 결혼을 거냐?”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렇게 하기로 했어? 쉽게 결혼하네.”

걔는 대학4 동안 나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 걔하고 결혼하는 것은 마음이지만 이것만은 약속하자.”

.”

결혼을 하면 집에 자주 테니까 일주일에 하루 걸러라도 아빠한테 전화해 주기. 오우케이?”

 , 집에 자주 건데?”

결혼하면 그렇게 . 약속은 지켜. 알았지?”

나는 혜린이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데 내심 대단히 흐뭇하였다.

그러나 부모로서 움직일 있는데 자식에게 신세를 수는 없었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 아침에도 혜린이에게서 전화가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파오는 것이었다.

나는 고통이 너무 커서 겨우 기어서 방으로 가서 펼쳐져 있는 위로 가서 쓰러졌다.

그리고 심장에서 정신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가슴이 너무 아픈 중에도 혜린이와 지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가 지내왔던 장면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미소가 나오는 것이었다.

이제 통증은 사라졌지만 나의 정신은 마음에서 연기처럼 빠져 나와서 머리를 통하여 굴뚝에서 저녁 연기가 나듯이 빠져나갔다.

멀리 황금 빛의 석양이 비치는 처가로 들어가는 저쪽의 산모퉁이에서 빨간 투피스를 입은 아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미소를 지으면서 길가의 코스모스들의 환송을 받으며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사람은 가을 나뭇잎이 아주 미미한 힘을 가지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만큼이라도 살아갈 의욕이 없으면 하늘이 목숨을 거두어 간다.

이처럼 식물들이 한해살이를 마치면 씨앗을 남기고 죽어가듯이 나도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죽었다. 

 

혜린이는 집으로 번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아서 불안하기 이를 없었다.

동안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어제 밤에는 아빠가 웃으면서 자기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어 주는 꿈을 꾸어서 더욱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혜린이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큰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혜린이에요.”

, 혜린아! 지내고 있어?”

, 그런데 아빠가 전화를 받지 않아요.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불안해 죽겠어요.”

, 별일이야 있을라구. 그렇게 불안하다면 종성이 보고 출근길에 들려보라고 .”

, 그렇게 해주세요. 고마워요. 엄마.”

, 들어가.”

, 안녕히 계세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성규의 아내는 종성이를 불렀다.

종성아! 출근하면서 작은집에 들려 . 혜린이가 전화를 했는데 작은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걱정이 태산이야.”

아파트요? 아니면 가게요?”

우선 아파트로 가봐.”

종성이는 출근을 하면서 어머니 말대로 작은 아버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경비실로 가서 현관문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종성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에 불은 켜져 있는데 사람은 없었다.

이번에는 방으로 보았는데 거기에 작은 아버지가 위에 누어 있었다.

종성이는 출근을 해야 되었기 때문에 혜린이가 전화를 했다는 것을 작은 아버지에게 전하기 위해서 흔들어 깨웠다.

그런데 작은 아버지는 조금도 움직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귀를 작은 아버지의 가슴에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어보았지만 들리지가 않았다.

경비원도 맥을 짚어보고는 종성이를 보며 말을 했다.

맥이 잡히지 않지만 따뜻한 것을 보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되겠어요. 그러나 저러나 쓰러진 사람이 이렇게 얼굴에 환한 미소를 보이는 처음 보네요.”

말을 듣고 정신이 들어서 종성이는 119 연락을 하고 집에도 연락을 하였다.

그리고 혜린이에게도 전화를 하여 작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을 알렸다.

앰뷸런스가 도착하고 구조대원들이 작은 아버지를 들것으로 안으로 옮기고는 서울 병원으로 달렸다.

작은 아버지를 급히 응급실로 옮겼지만 의사는 응급처치를 하고 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심장마비였어요. 처치가 너무 늦어서 어떻게 없어요. 영안실로 모셔야 거예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종성이는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서 집으로 연락을 했다.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 이렇게 늦었어?”

엄마! 여기 서울 병원이야.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엄마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 뭐야? 멀쩡하시던 분이 돌아가셔? ,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지?”

아니라니까. 의사가 심장마비래. 그리고 영안실로 모시래.”

아이고! 이런 변고가 있나? 여보! 전화 받아봐요.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

이번에는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그게 정말이냐?”

, 혜린이한테 연락을 해주세요.”

그래, 우선 작은 아버지를 영안실로 모셔라. 내가 가마.”

종성이는 아버지의 말대로 작은 아버지를 영안실로 모시고 나서 그제서야 얼굴을 보았다.

경비원의 말대로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는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이렇게 아름답게 죽을 있다는 것을 종성이는 처음 알았다. 

성규는 조카 혜린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린이냐?”

, 아버지.”

혜린이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에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그리고 언제 나올 있니?”

그러잖아도 오빠 전화를 받고 비행기편을 알아봤는데 일주일 뒤의 밖에 없어서 예약을 해놨어요

그러면 때까지 기다릴 없으니까 아빠를 엄마 옆에 모시마. 그런 알고 있거라.”

, 아버지. 죄송해요.”

그럴 없다. 들어가거라.”

아버지는 자기 동생의 저승길을 정성을 다해서 보내려는 마음이었고 혜린이는 아버지의 장례로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혜린이의 아버지는 동생을 위해서 자기가 수고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벼릿줄보다도 강하게 얽혀져 있는 핏줄의 연결이라고 하는 것이다.

 

                     로그 아웃

   

      일주일 뒤에 혜린이와 태호는 귀국을 하여 집에 먼저 들려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아버지가 대답을 하였다.

소릴 다한다. 너한테는 아버지이지만 나에게는 동생이다. 너무 됐어.”

혜린이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제가 미국에 가는 아니었어요. 어쩌면 때문에 이렇게 되셨는지도 몰라요.”

말을 듣고 아버지가 꾸짖듯이 말을 했다.

아마도 마음을 잡으라는 의미로 그랬을 것이다.

그런 소리가 어디 있어? 너의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너의 아버지 얼굴에 지었던 미소는 부처님 미소보다도 아름다웠다. 아마도 너와 아름답게 세상을 살아온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있었을 거야. 이제 아버지 산소에 . 엄마하고 같이 있으니까 찾을 있지?”

.”

산소에 가면서 사가지고 가서 뿌려주고 .”

, 다녀 오겠습니다.”

태호는 혜린이를 태우고 장인과 장모가 누워있는 산소로 향했다.

사람은 아직 흙이 마르지 않은 묘에 술을 따라서 부어 주었다.

그리고 혜린이는 혼잣말을 하듯이 말을 하였다.

이전에 아빠가 엄마와 마음이 통하고 흐른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겠어.”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태호가 물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살아있거나 죽어서도 마음이 통하고 흐른다는 얘기야.”

그렇다.

아버지와 딸이기 때문에 사람은 이세상에 있고, 사람은 세상에 있어도 마음은 흐르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자의 의도에 따라서 피교육자들에게 동질성이나 이질성을 갖도록 가르칠 있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은 광복 후에 피교육자들에게 나라의 이질성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가르쳐왔다고 있다.

아마도 이와 같은 이질교육은 앞으로도 년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교육에서는 일본이 한반도를 35년간 강제로 점령했었기 때문에 피교육자들에게 상대국에 대해서 더욱 많은 이질성을 심어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있다.


나라에 있어서 피교육자에게 이질성을 갖게 하는 교육은 가정과 학교교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가정에서의 이질성 교육은 가정의 풍습이나 생활 등에 따라서 생겨날 것이다. 이것은 가정의 고유한 것이므로 국내에서도 서로 이질성을 보이지만 국가 전체로서는 동질성으로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나라에 있어서도 국내에서는 고유한 동질성으로 나타나지만 나라 간에서는 이질성을 보이므로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에 대한 동질성 혹은 이질성은 개인의 인성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될 것이다.

개인의 인성이라고 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며 가정과 학교 교육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다.

말하자면 가정과 학교의 교육은 개인의 인성을 완성시키고 나아가서는 국민의 성향까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의 가정이나 학교의 교육을 살펴보면 나라사람들이 상대국에 대하여 동질감이나 이질감을 갖게 되는 원인을 있을 것이다.


우선
가정은 개인의 인성을 키워 주는 최초의 교육장소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가정교육은 조선시대까지는 주로 인간의 도리를 목표로 하여 가르친 같다.

시대에는 주로 농업이나 어업 그리고 상업 등에 종사하였을 것이므로 대개 힘이 강한 아버지가 외부의 일을 하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는 것이 일반가정의 살아가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고 법으로 생각되어서 엄한 존재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머니들은 자식들과 함께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아버지보다는 많았을 것이므로 더욱 친밀하고 인자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있어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까지나 마음의 고향으로서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속담에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닮아간다 말이 있다.

이것은 부모의 모든 행동이 아이들의 인성을 형성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가정교육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의 인생 교과서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인성교육은 조선시대에는 가정과 더불어 마을마다 서당이 있어서 인성을 완성시키는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있다. 

거기에는 문자를 아는 선생이랄 있는 노인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체계적인 인성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아이들이 서당에 입학하는 나이는 대개 주위의 사물을 구별할 나이가 되었을 때이다.

아이들은 서당에 들어가서 우선 천자문을 배우고 , 어린아이들의 윤리 교과서를 배우고 나아가서 어려운 동양의 철학인 사서삼경까지 배우게 되어서 단계적으로 인의예지신에 관한 윤리교육을 받았다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지금과 같이 먹고 사는데 필요한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도리에 관한 것이었다고 있다.

따라서 이것도 엄격하게 본다면 가정교육의 연장이라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인성이 완성된 아이들은 평생 인륜에서 벗어난 행동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 들어와서 한국이 갑자기 산업사회로 들어서게 되자 교육도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대신에 밥을 벌어먹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게다가 현대의 아버지들은 직장일로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거의 영향을 끼칠 수가 없게 되었다.

때문에 아이들은 주로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영향을 받으면서 자랄 밖에 없었다.


당연히
가정에서 아이들의 교육은 어머니 몫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받는 같은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현대의 아버지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정의 기둥이 아니라 그저 돈을 토해내는 현금입출금기정도로 보여지고 있는 같다.

현대 한국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어머니들이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들의 특유한 경쟁심이 작용하여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게 하려고 공부라면 모든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들의 생활이 아이의 공부에 맞추어져 있어서 가정의 규칙은 아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이가 가정의 중심이 되어 있으므로 어머니 이외에는 가족 누구라도 아이의 못된 행동을 고쳐주려는 것은 상상도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은 조선시대부터 교육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아이들의 교육에 힘을 기울인다.

특히,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부족하여 학원까지 보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을 하여도 관여하지 않고는 불안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유치원 교육도 가정교육을 연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인성의 형성도 가정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성은 어머니만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어 것이므로 절반의 인성 그것도 아이의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것이 형성될 것이다.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의 일에 관여하려는 경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된다.

이것은 요즈음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한 것으로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 일이 부모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과 같이 하는 수가 많다.

이것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생각인지는 없지만 어쨌든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 관해서 끊임없이 관여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요즈음 한국의 가정교육은 이전에 비하여 변형되어 버려서 아이들의 인성은 자기의 것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불안한 인성이 형성되면 학교의 교육을 받게 사물에 대해서 생각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언제나 교육자가 가르치는 것만 받아들일 것은 확실하다.

위에 사물에 대한 분별력도 약하게 되어서 학교의 교육에서 교육자가 이상한 사상을 전달해도 그대로 받아들일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사물에 관해서 편견을 갖게 되고 상대자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에는 외골수 국수주의자가 되든가 희한한 사상을 갖는 사회 속의 이단아로 가능성이 크다고 있다.

이것은 현대의 교육이 인성을 키우는 것에서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다.


한편,
일본의 가정교육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전에는 엄한 아버지가 가정의 중심 기둥으로 버티고 있었던 같다.

이것은 일본의 아이들이 번개, 지진과 함께 3 무서운 중의 하나를 아버지라고 하는 것으로 있다.

그러나 요즈음 일본의 아이들도 이제는 아버지를 귀신처럼 무서워하지는 않는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아버지와 주먹다툼을 벌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면 일본의 아버지들도 한국의 아버지들처럼 가정의 기둥으로서의 역할은 잃어버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도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만은 어머니가 모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일본의 어머니들은 한국의 어머니들과는 달리 아이들을 공부 쪽으로만 몰아붙이지는 않는 같다.

물론 그녀들도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좋은 학교를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한국의 부모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은 몇몇 어머니들을 통해서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겉으로 보기에 자녀를 교육시키는데 있어서 나라 어머니들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부모의 모든 것을 바쳐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있는 같았는데 일본의 어머니들은 그래도 공부에 관한 아이들에게 많이 맡겨두는 같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가정교육의 방법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성도 다르게 길러져서 나라 사이에 이질감이 생겨나게 것이다.

말하자면 나라가 다르다는 것만으로 이미 이질감은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나라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모습에서 확실하게 있을지 모른다.

예를 들어 어느 추운 겨울날 한국의 어느 가정에서 어머니와 아이가 옷을 입는 것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아이는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하고 어머니는 아이를 위하여 옷을 입히려고 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밖이 추워서 아이가 병이라도 걸릴까 옷을 입히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어머니의 마음은 아이가 성장을 하더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불안하여 견딜 없게 된다.

, 어머니의 마음은 아이에게서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즈음은 이것을 과잉 보호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어머니들은 이러한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한편
, 일본의 어느 겨울 함박눈이 내리는 쿄토의 거리를 소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빡빡머리를 하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겨울 옷을 입고 아들은 소매로 러닝 셔츠에 검은 운동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양말은 신고 있지 않았다.

쿄토의 날씨는 겨우 내내 그렇게 춥지는 않지만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으므로 살갗에 닿는 기운은 차가웠을 것이다.

만약에 모습을 서양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면 틀림없이 아동학대라고 말했을 것이고 한국인들이 보았다면 아버지의 몰인정에 혀를 찼을 것임에 틀림없다.

주위의 일본인에게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렇게 옷을 입힌 이유를 들었을 비로소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일본은 여름이 되면 고온 다습해서 병에 걸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의 아이들이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장갑을 낀다거나 여자 아이들이 청바지를 입은 모습을 보기는 드물다.  

이들 예에서 본다면 한국의 부모는 인공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대해서 일본의 부모는 아이를 자연에 맞추어서 키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예에서도 있는 것과 같이 한국과 일본의 어머니들이 아이를 교육하는 방법에 따라서 인성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과일을 깎는데 있어서 한국이나 일본은 칼날이 안쪽으로 향하게 해서 껍질을 벗기지만 동남 아시아에서는 칼날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이질적인 것이다.


가정교육에
의해서 아이들의 인성이 형성된다면 학교교육에서는 지식의 전달 과정을 통하여 인성을 완성시키면서 주위의 사물을 판단할 있는 사고나 사상까지도 형성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비로소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을 받게 된다.

시기에는 모든 교과의 기본이 되는 것을 배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교육자들은 그들의 주관적인 사고나 사상이 들어간 지식을 피교육자들에게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학교교육에서 개인의 주관적인 사고나 사상은 피교육자들에게 전달해서는 안되지만 한국의 학교교육에서는 그것이 너무 흔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교육자들이 피교육자들에게 상대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전달한다면 그들은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을 받은 피교육자들은 아직 불안정한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국에 대해서 모르는 사이에 이질감을 갖게 것이다.

말하자면 가정교육이 나라의 특성에 따른 인성을 갖게 하여 상대국에 대하여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면 학교교육은 교육자의 사고나 사상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피교육자들에게 그것을 형성시킨다고 있다.


당연한
일이지만 교육자가 피교육자들에게 상대국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교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자가 피교육자들에게 대부분 이질감을 갖게 하는 교육을 경우에는 동질감은 묻혀져 버리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교육자들이 강단에서 절대자가 것은 이전의 서당교육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당교육은 인성교육이었으므로 그대로 받아들여도 아이들의 인성을 형성하는데 장애가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서당선생의 사고라고 하는 것은 윤리만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인성형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서당공부는 선생의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는 도제 교육에 가깝기 때문에 서양의 교육에서 흔히 있는 것과 같은 자기의 견해를 밝히고 토론하는 교육은 아니다.

이와 같은 교육은 옛날에 인간에 바탕을 윤리를 가르치는 방법으로서는 없이 좋은 제도일지도 모르지만 서양교육제도를 받아들인 오늘날에는 불합리한 것이다. 

그런데도 도제 교육방법이 현재 한국의 교육에서도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 교육자는 계속 설명만 하고 학생은 듣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질문이라든가 토론 등은 거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학생이 질문을 한다면 교육자나 다른 학생들에게 이상한 학생으로 취급을 받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자는 개인이 생각하고 있는 사상, 정치 그리고 일본에 대한 것들을 피교육자들에게 얼마든지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부모들은 이에 대해서 비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 교육자는 직업인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관해서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교육자가 그들의 사상을 자기 아이에게 주입시켜서 인생을 망쳐 놓는데도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사회제도가 이러한 것을 제재할 있는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동하지 않을 뿐이다.

교육자들로부터 이상한 사상이나 정치 그리고 일본과의 문제에 관한 지식을 전달 받은 학생들은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게 되어도 결국에는 참인 것으로 인식하게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갈수록 교과의 내용은 어려워져도 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학생들의 사고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머무를 밖에 없게 되어서 치우친 사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특히, 한국 학생들이 일본에 대해서 이질감을 갖게 되는 것은 학교의 교육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가장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 정도가 되면 일본은 좋지 않은 나라라고 하는 막연한 선입관이 두뇌 속에 고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현대 학교교육은 조선시대의 그것보다도 아이들의 인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아이들을 단순화시켜 놓았다고 말할 있다.

이와 같은 교육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습득된 일본 지식으로 편견을 갖게 되고 이질감을 느끼게 되므로 성인이 되어도 좀처럼 변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한편,
일본의 학교교육도 한국의 그것과 크게 다를 없다.

그것은 현대의 한국교육의 시발점이 일본에 의해서 한반도가 강제로 점령되었던 시기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현대의 한국의 교육제도는 일본의 것을 이식해 왔다고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교육방법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도제 교육에 가깝다고 있다.

일본의 도제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치원에서는 어려서부터 모르는 사이에 일본인의 인성을 형성시키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과 협력하는 법을 익히도록 교육하고 있는 같다.

예를 들어 어느 절에 속해 있는 유치원에서는 4~5살의 아이들을 데리고 달에 번씩 다른 암자로 참배를 가기 위해서 4 킬로미터나 걸어서 가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으로 유치원 선생님들이 줄을 뒤에서 붙잡고10여명의 아이들이 줄에 꿰어져 있는 둥근 버스 손잡이를 잡고 길을 간다.

모습은 단순하게 보일지 몰라도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 아이들의 안전도 지킬 있을 뿐만 아니라 협력이나 질서를 지키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의 통학길조차도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선택하여 만들어져 있는데 교차로를 건너기 전에는 흰색 페인트로 정지선이 그려져 있고 바로 뒤에 족의 아이의 발자국을 그려 놓았다.

이것은 외국인의 눈에는 재미있게 보일지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일본이라고 하는 틀에 넣어서 전형적인 일본인으로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도제 교육방법은 소학교, 중학교, 고교를 거쳐서 대학과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같다.


일본의
학교교육에서는 한국의 학교에서 일본에 관해서 가르치는 것처럼 한국에 관련된 것을 가르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인들이 한국에 관한 사실이나 일본 역사에 관해서 견해를 밝히는 것을 좀처럼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이 상대에 대해서 좀처럼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고 해도 그것은 거의 무관심에 가까울지 모른다.

현대 일본 사회가 복잡해서인지 아니면 자기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는 없다.

어쨌든 도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지시에 따르는 복종적이면서 내부 지향적인 성격이 되기 십상이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시스템이 거의 비슷한데도 불구하고 나라 아이들이 보여주는 사고나 사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은 가정에서의 부모의 교육과 학교에서의 교육자들이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 때문에 나라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는 반일감정을 보이는데 대해서 일본인들은 한국에 관해서 거의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과
일본 나라에 있어서 교육은 서로 관여할 없는 부분이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나라의 교육은 상대국에 관한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쪽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동질화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방법에 따라서는 동질화를 이룰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으므로 앞으로 나라의 교육의 방향이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까지 기술한 것처럼 역사적인 사실
, 정치인, 국수주의자들, 사고와 사상 그리고 이질적인 교육은 두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는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서 작용한다.

이들 장애요소들은 극복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동질화를 촉진하는 요인들에 의해서 거의 무시될 정도로 되어있다.

현재 두 나라사람들은 이들 장애요소를 뛰어넘어서 급속하게 동질화되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1. 1. 27. 15:33 [연재]시

16. 효자의 에미



에미는 폐병으로 피와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날 저물어 사방이 어둑어둑해도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잊어버린 자식을 찾아서  

 

아랫 동네로 내려 왔다.

 

 

자식은 놀이에 정신이 빠져서

 

어두워진 줄도 모르다가 에미가 부르는 소리에

 

불이 나게 달려가서  

 

송아지가 에미 배에 달라붙듯

 

에미의 뒷 치마폭에 달라붙었다.

 

 

하늘에만 별들이 점점이 빛날 뿐

 

에미의 겨우내 빨아 입지 않아서 때에 쩔은 흰 저고리도

 

하얗게 보이는 사방이 온통 새까만 밤에

 

병든 에미와 자식이 더듬이로 길을 찾으며

 

산 중턱의 집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자식은 에미에게 떨어지면 어두움에 까맣게 물든

 

도깨비 손이 쑤~욱 뻗어 나와서 잡아 갈 것 같은 마음에 

 

에미 냄새 나는 치맛폭을 제 몸에 둘둘 말고

 

얼굴만 빼꼼히 내 놓고는 에미 걸음에 맞추어

 

어둠 속을 나아간다.

 

 

에미는 어른이라서 무섭지 않다는 것을

 

자식에게 보이려고 팔짱을 끼고 걸어가면서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자식에게

 

효자라서 에미를 앞에 모시고 가는 거라고 한다.

 

무서워서 뒤에 숨는 자식을 

 

에미는 효자라고 한다.

 

 

에미는 자식이 채 자라기도 전에

 

자신이 만든 효자의 뒷 꽁무니를 따라와 보지도 못하고

 

집을 향하여 어둠 속을 헤치며 가듯

 

이번에는 에미 혼자서 팔짱을 낀 채

 

저 세상으로 훠이 훠이 가버렸다.

'[연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대  (0) 2013.08.10
16. 효자의 에미  (0) 2011.01.27
15. 오 마이 갓! (Oh my god!)  (2) 2010.12.04
14. 나목 (벌거벗은 나무)  (0) 2010.11.16
13. 니는 아나?  (1) 2010.11.10
12. 자존심  (0) 2010.10.26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 12. 27. 16:30 교육

천재 만드는 법?



일간지의 기사를 읽다가 연재 소설로 [천재 만드는 ]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어서 이에 관하여 생각하여 보기로 하겠다. 과연 위의 제목처럼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타고나는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위의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서 [자기 자식은 천재]라는 말과 학교 다니는 자녀를 부모들에게서는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한다] 푸념 섞인 얘기를 듣고는 한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언제나 하는 말이 [대한민국 국민들이 세계에서 머리가 제일 좋다] 말이다.

 

이와 같다면 한국인은 타고나면서 천재성이 있기 때문에 천재는 천성적으로 타고난다는 맞다. 그런데 [천재 만드는 ]이라는 연재소설에서 얼핏 눈에 들어왔던 [집중력]이라는 말이 천재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재라고 인정하는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을 생각하면 집중력이 천재를 만드는 같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이라는 이론을 내놓기 전에는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일화들을 보면 그가 이론을 내놓기까지 엄청난 집중력으로 매달렸다는 것을 짐작할 있다.

 

 예를 들어 호숫가에 산책을 갔다가 양말을 벗어 놓고 왔다든가 아니면 대학 교수로 채용될 보수를 결정하면서 이것을 결정하지 못하여 아내가 대신했다는 등이다. 이것은 그가 가지에만 몰두 있는 우리 사회에서 말하면 바보였다. 에디슨도 마찬가지였다. 전등이나 축음기 등은 당시 누가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천만 실패해도 그는 거기에 매달려서 결국 성공해 내었다. 우리가 생각하면 또한 멍청이였다.

 

[집중력]으로 학우들로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실제 있었던 예를 들어 보겠다. 돈이 없어서 군화를 구해 신고 군복을 물들여 일년 365 피부처럼 달고 다니던 시절, 명문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노트 돈도 없었단다. 그래서 학생은 책상 위에 손가락으로 교수 강의하는 것을 받아 적는 시늉을 했는데 시험만 보면 만점이었다는 것이다. 대단한 집중력임에 틀림없다.

 

이상의 예를 보면 천재는 만들어지는 같다.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다. 유전자 구조를 규명한 왓슨과 클릭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왓슨은 집중력이 대단한 천재였던 대해서 클릭은 타고난 게으른 천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재는 타고난다는 말도 맞고 집중력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맞다. 다만 집중력을 발휘하려고 해도 그만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타고난 성격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나 두뇌가 뛰어난 사람들이 2~3 %정도는 존재한다.

 

부모는 자녀들이 배우는 것만 보고도 깜짝 놀라서 [ 아이가 천재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느 자녀나 같다는 문제가 있다. 이로서 보면 천재는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보통의 두뇌로도 예리한 사물 관찰력과 집중력으로 일정의 효과는 얻어질 있다.

 

자녀를 천재로 만들거나 아니면 바보로 만드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가지 목표를 세워서 몰두하게 해서 세상 일은 바보지만 분야에서는 천재로 만들든가 아니면 세상 일에 모두 관심을 갖게 하여 정신력을 흩트려서 세상 사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천재를 만들든가 하는 것이다. 천재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에게 목표를 제시해 주고 간섭을 자제하여 거기에 집중하게 한다면 분야에서 천재가 있을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URECA 2010.12.27 18: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자녀도 천재로 만들고 싶은데... 부모 뜻대로 안네요...

  2. 호미 2010.12.28 1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AURAKY님 안녕하세요 ^^
    제 블로그에 남기신 흔적을 보고 외국에 계신지 알았읍니다
    AURAKY님의 생각이 있는 글이 좋아 그냥 다녀가기만 하였네요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10. 6. 29. 14:09 [연재]시

5. 아름다운 동행



지아비는 왼쪽 다리가 없고

 

지어미는 오른쪽 다리가 없다.

 

지아비는 오른쪽 다리로 버티고

 

지어미는 왼쪽 다리로 버티며

 

어깨 동무를 하고 평생을 걸어 왔다.

 

 

애비는 머리가 비고

 

자식은 머리가 찼다.

 

애비는 몸으로 지탱하고

 

자식은 머리로 지탱하며

 

서로 지탱해서 세상을 살아 간다.

 

 

형은 모든 가졌고

 

아우는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형은 가진 것을 아우에게 나누어 주고

 

아우는 감사의 마음으로 받으며

 

형제의 사랑을 마음에 담는다.

 

 

부자인 이웃은 인정에 불행하고

 

가난한 이웃은 인정에 행복하였다.

 

부자인 이웃은 자선으로 행복을 사고

 

가난한 이웃은 행복을 팔아서

 

이웃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다.

 

 

세상살이는

 

너와 내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동행이다.

 

 

쓰고 나서: 좌판 늘어놓듯 해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서로 화목하게 지냈으면 바라는 마음에 그냥 나열했습니다.

 

 

 

'[연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개 같은 세상이라고 내뱉지 마라  (1) 2010.08.24
PM 11시 59분  (0) 2010.07.13
5. 아름다운 동행  (0) 2010.06.29
4. 종다리는 노래했었다.  (0) 2010.06.19
3. 서러워도 내 한참 서러워도  (1) 2010.06.15
2. 사랑 마음 새  (0) 2010.06.08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좋은 아버지 되고 싶다? 그럼 공부하세요! 교육 프로그램 봇물] 이것은 일간지의 광고인지 타이틀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와있다. 과연 좋은 아버지가 교육을 받아서 있나 짚어보자.

 

그래 그냥 평범한 아버지로 지내서 자격지심을 갖는 것보다는 교육을 받아서 그나마 자식들에게 실천하면 아버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자식들에게 실천한다면 자식들은 모두 같은 붕어빵을 찍어내는 것처럼 아닌가?

 



이러한 때문에 [인생의 고리]에서 [붕어빵 자식 찍어내기]라는 것이 있다. 요즈음은 배웠다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어딘가 아버지 역할이 부족하다고 안달을 하는 같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두어야 자식이 되는 안다[부모와 자식의 상관 관계]. 그래서 자식을 몰아붙이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개성적인 붕어빵 인간이 되고 만다.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했다. 말은 진리이다. 평생 한마디 하던 무식한 아버지가 어느 술을 먹고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자식은 아버지를 존경하고 동정하였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지식은 저절로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즈음 문제는 자식에게 간섭하고 자식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일등 부모인 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자식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앞에서 우쭐대는 꼴불견 아버지들도 있다. 문제는 아버지가 등을 보이지 않고 앞면을 보이는데 있다. 성장하는 자식에게 자신의 지식이라든가 힘을 과시하는 아버지는 최악의 아버지이다. 말하자면 자식 앞에서 잘난척하는 아버지를 말하는 것이다.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자신의 뒤를 보고 자식이 저절로 따라오게 하세요[모정의 세월]. 그러면 자식은 저절로 훌륭하게 성장할 겁니다. 어딘지 불안정하게 보이는 자식을 억지로 훌륭하게 만들다가는 재목이 어린 나무 제일 꼭대기의 성장점을 자르는 것과 같은 일이 수도 있습니다. 대신 아버지는 이렇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자식이 스스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식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것입니다. 비정상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가정을 소홀히 하는 아버지들을 제외하고 일반 아버지들은 그렇습니다. 성장기의 자식에게 부모가 너무 간섭을 하면 자식의 머리에 그것만이 남아서 성장해서도 소원하게 것입니다.

 

가장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이 저절로 자라게 지켜보라는 겁니다. 재목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약간의 가지치기는 필요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을 자식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설명 내지 상담으로 국한되어야 것입니다.

 

자란 사람들은 언제나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 것이지 모습을 보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이 많고 적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로 생색을 내지 말고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자식이 자연히 느끼도록 하면 자식은 좋은 아버지 어머니로 생각할 것입니다. 억지로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문의 길(대학원)(9)  (0) 2010.06.08
어느 시간 강사의 죽음  (0) 2010.05.28
좋은 아버지 되고 싶다? 그럼 그렇게 보이세요!  (2) 2010.05.24
학문의 길(대학원)(8)  (1) 2010.05.22
학문의 길(대학원)(7)  (0) 201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