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정하면 다시는 바꾸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길

울지 마라 방황하지 마라 괴로움을 이겨내고

사람은 희망을 이루는 거야

 

깊은 눈에 파묻히면서도 견디며

보리는 싹을 틔우고 봄을 기다린다

삶의 시련에 몸을 맡길지언정

의지를 꺾지 않는 사람이 돼라

 

가슴에 근성의 불꽃을 담고

이 길만 똑 바로 가기로 정했다

인생의 외길을 내일에 걸자

꽃은 고난의 바람 속에 핀다.

 

일본을 약간이라도 아는 분이라면 일본의 국민가수 미소라히바리를 아실 거예요. 이 분이 한인계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일본인들도요. 그런데도 일본인들에게 국민가수로 추앙 받고 존경 받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전쟁으로 피폐한 일본국민들에게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랍니다.

 

원래 노래도 잘해서 동료가수들도 감히 그 분의 노래를 어려워서 흉내를 못 낸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분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도 한번 듣고 난 후에 두 번 째 들으면 흥얼거리고 세번 째부터는 감정을 넣어서 노래를 불러 자기 걸로 만든다고 작곡가들이 술회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가히 천재적인 가수라 할 수 있지요. 위의 글은 그 분이 부른 [人生一路], 외길 인생이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울적할 때 힘들 때 가끔은 이 노래를 듣고는 합니다. 지금 힘든 분들도 이 가사를 읽으시면서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꾸우뻑~

 

 

'이런저런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약에 이 세상이 연극이라면  (0) 2013.10.10
인연  (0) 2013.09.10
외길 인생(인생 응원가)  (0) 2013.08.25
몰카 말고 실카만 찍어  (0) 2013.08.03
마누라를 시집 보내야 할랑 게 벼.  (0) 2013.08.02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  (0) 2013.05.31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때마침 오늘 자, 중앙일보에 일본의 요코하마시립대학 의과대학원의 다케베 다카노리 박사 팀이 유도만능줄기세포 제조방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미니 간세포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실제로 생체에 적용할 경우 암세포가 함입될 있다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이미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만약에 이것이 사업화된다면 부가가치가 엄청난 성장동력이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창조경제는 새로운 연구개발부터 시작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여전히 구태의연하게 이전의 굴뚝산업이 걸어온 길을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벤처 계획이 실패한 것은 관련기관의 개입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창조경제로 가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면 미창부에서 프로젝트 선발을 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방식대로 관련기관에서 검토와 평가를 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는 건너 갔다고 보아야 한다.  

 

삼성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은 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세워서 15천억 원을 조건 없이 연구개발에 투자한다고 해서 제대로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YTN 뉴스에 의하면 특허를 자기들이 우선 사용하고 특허를 때도 삼성을 통하도록 했기 때문에 미창부에서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구개발비 지원이라는 미명하에 값싸게 대학, 국공립연구소 연구원, 벤처기업 연구원들을 이용하겠다는 의도 외에 다름 아니다.

 

삼성이 기왕 국가와 자기 기업의 미래를 생각했다면 손태장 모비다재팬 회장처럼 과감하게 투자를 해야 것이다. 그는 학생들 중에서 벤처 아이템을 선발할 아이디어와 의욕만을 보고 6천만 원씩 투자하였다고 한다(창조경제로 가는 길). 이처럼 삼성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살아남을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인간의 미니 간을 개발한 것과 같은 성장동력을 발굴해내야 임기 내에 창조경제의 씨앗이라도 심을 있다. 이것은 프로젝트의 선발방법과 관련기관의 개입의 여부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창조경제의 씨앗이라도 만들고 싶다면 지금까지 왔던 기존의 틀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재 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당연히 두 나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북한문제가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두 나라 정상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박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관해서도 시진핑 주석이 수긍했다고 한다.

 

두 나라 정상은 회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임으로 해서 북한을 서서히 평화라는 자루로 몰기 시작하였다. 이 회담을 보고 성급한 사람들은 북한이 평화를 위한 회담장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쥐를 몰아간다고 해도 길을 선택하는 것은 쥐의 마음이다. 더구나 중국도 한반도 평화정착을 얘기는 하고 있지만 쥐가 굶어 죽지 않도록 먹이는 끊임없이 제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길로 몰린 북한이 선택할 길은 정해져 있다. , 같은 외톨이가 된 일본과 손을 잡거나 남한을 점령함으로써 북한이 처한 상황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과의 손을 잡고 경제를 일으키는 문제는 북한의 여건상 적합치 않다. 그러므로 그들로서 현재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에서는 남한을 점령하여 경제력을 흡수하는 길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전처럼 무력을 사용한다면 한국에서 몇 배로 보복공격을 한다고 했으므로 이 방법은 꺼려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남한을 통째로 삼켜버리는 것이다. 그 방법은 남남분열에 달려있다. 그들은 한국에서 이념갈등을 야기시켜서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이 방법이 앞으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외통수 길이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교육, 공공기관, 사법, 입법 심지어 정부에 터를 닦아왔으므로 실천단계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북한은 3년만 버티면 남한을 통째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은 앞으로 이념논쟁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는 일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다행히 국민들의 의식이 건전한 것이 방패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 나라가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이 그들의 전략에 넘어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현재 북한의 장성택 국방 부위원장 일행이 중국을 방문하고 두 나라간의 경제협력관계 개선에 나선 것 같다.

 

이것은 리영호 북한 총참모장을 해임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고 그만큼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유지하기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자 경제로 선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말하자면 북한으로서는 체제도 유지하고 경제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번 장성택 일행의 방중에서 나선, 황금평 경제특구 관리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것을 보면 북한은 개성공단의 경제적 이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남북한 경제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과의 경제협력관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남북한간에 정치적인 경색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북한의 체제가 아직은 불안하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 발전에 한국을 끌어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그들의 경제가 한국과 비슷하게 될 때까지 한국과 경제협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재와 같이 전체북한주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관계는 유지하면서 다른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모색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알본의NHK BS 텔레비전방송에서2003 4월에 한국에서 제작된 후유노 소나타라는 드라마 편이 방영되었다.

의외로 일본인들은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드라마를 시청하였다고 하며, 특히 일본 여인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인기가 있었던 같다.

덕분에 부인의 옆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남편들도 덩달아서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하여 재방영이 되었고 드디어 2004 4월에는 NHK 방송에서도 방영을 하였다는 것이다.


후, 2009 NHK BS방송 20 주년을 기념하여 여러분이 뽑은BS 20 명작 에서 지난 20 동안에 방송된 드라마 223편에 대해서 시청자의 인기를 조사한 결과 1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얻은 덕분에 출연한 배우들도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들의 인기는 일본인들이 별명을 지어주었다는 것으로도 있을 것이다.

, 일본 팬들 사이에 배용준욘사마 불리고 그의 상대역이었던 배우인 최지우 지우히메 그리고 박용하는용하사마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드라마로서 겨울연가 일본인들에게 미친 영향은 아줌마 혁명이라고 정도로 충격이었다고 생각된다.

녀들은 과감히 현실의 틀을 부수고 드라마 중에서 보았을 꿈을 찾아서 한국으로의 여행도 주저 없이 실행하였던 것이다.

 일본인들의 한국으로의 행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박용하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도 그의 팬들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한국까지 날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텔레비전방송에서 한국의 드라마가 방영되기까지는 한국에서 텔레비전방송이 시작되고 나서 적어도 30 년이 지난 뒤이다.

동안 일본의 텔레비전방송들은 그들 나름의 창작성이 있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을 것이므로 한국의 대중문화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NHK 텔레비전방송이 처음으로 한국의 드라마인 겨울연가 방영한 것은 의외로 생각되는 것이다.


일본의
텔레비전방송에서 한국의 드라마가 방영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금은 한국의 대중문화도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한국의 드라마도 방송초기에는 일본방송의 영향을 받을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일본의 강제지배로부터 벗어났을 때에는 한국에 근대의 대중문화라고 하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텔레비전방송이 시작되었을 때에는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의 텔레비전방송 문화를 대부분 답습할 밖에 없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한국의 드라마도 정서가 유사한 일본의 것을 따라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미국이나 유럽의 드라마 요소들은 한국인들의 정서와 완전히 다르고 지리상으로도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드라마에는 아무래도 일본의 정서가 함유될 밖에 없었을 것이다. 


비록
한국 드라마가 초기에는 일본의 방송을 모방할 밖에 없었다고 해도 드라마 작가들은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 창조성이 있는 드라마를 쓰려고 노력한 것은 인정해야만 것이다.

때문에 한국의 요소가 포함되어있는 역사 드라마 같은 것들은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다.

이와 같은 드라마의 대표적인 중의 하나가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대장금이라는 타이틀로 방영되어서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은 것이 있었다.

드라마는 일본에서도 궁정여관 장금의 다짐(宮廷女官チャングムの)’ 이라는 타이틀로 2004 10월부터 일본 NHK BS2에서 일년간에 걸쳐서 방송되었다고 한다.

그리고NHK 방송에서도 다음 10월부터 년여에 걸쳐서 방영될 정도로 겨울연가 뒤떨어지지 않는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한국 역사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받은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이와
같이 한국의 역사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에 현대 드라마를 창작하는 작가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중에서 나온 작품 중의 하나가 여기에서 기술하고 있는 겨울연가이지만 드라마가 한국에서보다도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은 데에는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겨울연가 내용에 일본의 만화와 같은 순수성이 내재되어 있어서 일본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었던 순수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정서와 일본의 것이 혼합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방영되고 있는 외국드라마는 많이 있을 것이므로 겨울연가 한국드라마라는 것만으로 인기가 있었다고는 말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생겨서 일본의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 일본이나 중국 배우들도 모두 미남자이거나 미녀들이므로 특별히 겨울연가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이 생겼다고는 없다.

사실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일본에서 관심을 끌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일반 배우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가 출연자들의 생김새에 의해서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것으로는 없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겨울연가 인기를 얻은 원인으로는 내용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드라마 중에서의 사랑이야기는 유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계산된 것도 아닌 젊은이들에게 흔히 있을 법한 풋내 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드라마 전체로 보면 일본의 것보다는 진중하게 느껴지고 한국의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는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드라마의 내용이 일본인들의 관심을 끌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겨울연가 빠져들게 되었던 것은 드라마의 분위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드라마에는 일본인들, 특히 일본 여인들이 좋아 있는 분위기가 깔려있었기 때문에 감상에 젖어서 보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드라마에는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지고 지순한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어서 일본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일본 여인들은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을 바쁘게 살아오다가 문득 자기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같은 추억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녀들은겨울연가 보면서 남자 주인공 옆에 젊은 날의 자기를 세워 놓고 행복한 기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로서 여자 주인공의 옆에 자기를 놓고 잠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겨울연가 일본인들에게 이상한 현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 것은 나라사람들의 정서가 같다고 하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이
드라마에 보여준 반응을 생각하면 동안 일본에서는 한국의 문화나 정서 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겨울연가 보면서 같이 느껴지던 한국의 정서에서 다른 자기를 발견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에는 한국적인 요소도 들어 있었지만 그러한 것이 오히려 일본인들을 마음의 고향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겨울연가이후에 NHK에서 방영된 대장금 한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이다.

사실 대장금 한국의 역사드라마이므로 일본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약간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 높은 시청률을 보인 것은 일본인들의 이전의 생활이 드라마의 분위기와 닮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겨울연가 대장금 일본에 알려지고 나서 편의 한국 드라마가 일본의 텔레비전방송에서 방영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비즈니스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일본인들이 정서적으로 한국에 갑자기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이전까지 한국인들이 한국의 텔레비전방송에서 일본의 문화와 정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과 같은 과정으로 이번에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것이 포함된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받아들였다고 있다.


여기서는
일본에서 방영된 편의 드라마에 관해서 살펴보았지만 나라사람들의 정서는 서로 닮아있다는 것을 있었을 것이다.

, 드라마가 나라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면 일본인들이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한다는 것은 나라사람들의 정서는 같다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의 드라마는 나라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동질성을 확인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고 있다.

특히 겨울연가 나라사람들이 동질성을 확인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드라마는 나라사람들의 마음을 혼합하는 믹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구상에서 인간의 사상은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져서 전파되어 왔다.  

동양의 사상은 자연이나 인간이 근본이며 중국의 공자, 맹자, 순자 그리고 장자 등과 같은 사상가들에 의하여 제창되어서 주위의 나라들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사상들은 대를 이어서 이어져 내려오고 현재에도 동북 아시아인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어서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양 사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그 사상들이 발생한 중국보다도 오히려 한국과 일본처럼 보인다.


한편
, 서양의 사상은 사물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그리스 사상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유럽으로 전파되어 서양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사상은 서양 사고 방식의 근본이 되어서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상은 서로 다르고 각기 그들의 정신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동양적인 사상은 자연이나 인간이 근본이기 때문에 정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서양적인 사상은 사물의 이치를 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이성적이다
.

만약 이것을 형태로 나타낸다면 동양의 사상은 원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고 서양의 그것은 사각형으로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세계 각 나라의 국기이고 그 속에는 국민들의 특질과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세계 각 나라의 국기는 어떤 특정인의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졌거나 역사적으로 전해져 내려 왔거나 아니면 계획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대부분 그 나라의 사상이나 국민성이 포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기가 사람의 사고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같은 지역의 국기들은 서로 닮은 꼴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예를 들면 서양의 국기들은 빨강, 초록, 파랑, 노랑 그리고 검정 등의 원색을 사용하여 직사각형으로 표현된 것들을 들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의 국기에도 오랜 역사를 지나오는 동안에 생겨난 그 나라의 사상이나 국민성 등이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국기를 비교해 보면 두 나라 사람들의 사상, , 국민성과 특질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이나 일본이 현재의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부터 일 것이다
.

그 이전에는 한국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제기나 군을 상징하는 군기 정도가 존재했을 것이고 일본에서도 쇼군기나 군기 정도가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국기를 사용하게 되자 한국과 일본도 국기를 만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일본도 그들의 국기를 만들었다고 생각되는데 이상하게도 두 나라는 중앙에 큰 원으로 나타내었다.

이것은 국기에 동양적인 사상과 국민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두 나라가 국기의 중앙에 큰 원으로 표시하고는 있지만 원내는 서로 다르다
.

, 한국의 국기는 태극 모양으로서 원 절반의 상단에는 빨간색이고 하단에는 파란색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일본의 국기는 원 전체가 빨간색만으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두 나라의 국기 중에 있는 원 자체와 원 안의 색이 두 나라 사람들의 사상과 특질을 나타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왜냐하면 서양 국가들의 국기가 대개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해서 한국이나 일본은 국기의 중앙에 큰 원을 사용하고 있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두 나라의 국기가 처음 생겨날 때 공통적으로 원을 사용했다는 것은 국기를 맨 처음 생각한 사람들의 생각이 닮아있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두 나라 사람들이 동양 사상의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사고가 유사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국기의 중앙이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모든 것을 가두어 두고 그들만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 

원은 외부와 구분하여 내부를 폐쇄시키기도 하지만 원 안에서는 사각형이나 삼각형처럼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는 원만하게 움직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 원 안에서는 약간의 융통성이 있어서 이성적인 것보다는 정서적인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한편
, 서양의 국가들은 사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므로 국기를 직선으로 표현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곡선으로 나타내는 정서적인 요소가 들어설 여지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고는 논리에 근거해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요소가 동양의 정서와 가끔 충돌을 일으키고는 한다.


만약에 한국이나 일본의 국기 중에서 한 쪽의 국기가 서양처럼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면 두 나라 사람들의 사고와 특질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

말하자면 서양의 이성적 사고와 동양의 정서적 사고가 충돌하게 되어서 두 나라는 기름과 물처럼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국기가 중앙을 원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사고나 특질이 유사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서양의 국가들이 대부분 국기를 직선으로 나타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유사한 것처럼 동양에서도 공통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국가들의 국기는 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연유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동양 사상이 영향을 미쳤던 아시아의 국가들의 국기에는 대부분 원이 들어가 있다
.

특히, 동북 아시아 3국은 국기 안에 원이 들어가 있는데 그 중에서 한국과 일본의 국기만 가운데가 큰 원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전에 타이완이 중국 본토에 있었을 때, 그들도 국기에 태양을 표시하였지만 좌측 상단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은 중국이 한국과 일본과 같은 동북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이기는 하지만 한국인과 일본인의 사고와 특질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중앙에 공통으로 큰 원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국기에 표현된 원에 의해서 사람들의 사고와 특질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고와 특질이 국기에 표현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러나 두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은 국기의 중앙에 있는 원 안의 색깔처럼 서로 다르게 표현될지도 모른다.

, 사람들의 사상과 정서와 같은 것은 원으로 표현되어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특질은 약간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태극기의 원내는 양과 음으로 표시되어 있으므로 외부지향적인 성격과 내부 지향적인 성격이 혼재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성의 표출에서 어느 쪽으로 작용할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복잡한 형태를 보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
.

이에 대해서 일본의 국기가 원 안이 전체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은 일본인들의 성격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 음성적인 내부 지향적인 성격을 보충해 주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두 나라가 국기의 중앙을 원으로 표현한 것은 두 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인 사고와 특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이것은 직선적인 이성을 가진 사고가 아니라 정서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안에서 그들끼리는 화합과 융통성을 보여 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두 나라 사람들이 외부에 대해서는 철저한 배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원으로 표현된 사고와 특질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나라의 사람들의 사고와 특질은 국기의 중앙에 원으로 표현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은 우주로부터 오는 기를 받고 자란다.

그런데 지구상에 우주의 기가 내리는 양은 나라마다 다르다고 한다.

당연히 한국이나 일본에서 받는 우주의 기도 다르기 때문에 동물이나 식물들의 생김새는 같아도 식 재료로서 이용할 경우, 맛이나 성분은 약간씩 다를 것이다.

하물며 대륙간에는 그 차이는 더욱 클 것이다.

이것은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동물과 식물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맛과 향을 다르게 하는 요인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일본의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의 육류에는 독특한 맛이나 향이 포함되어 있는데 비해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되는 육류에는 그러한 것이 없다.

또, 생선류, 조개류나 해조류와 같은 바다의 산물도 한국과 일본의 앞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 맛이 있고 다른 지역의 것은 전혀 맛이 없다.

야채류도 마찬가지로 한국과 일본의 배추는 그 나름으로 맛이나 향이 있고 씹는 맛이 특별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산출되는 배추로 요리를 해 먹는다고 한다면 종잇장을 씹는 것 같이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과일도 한국이나 일본에서 산출되는 것은 독특한 향이 있어서 복숭아는 복숭아 향이 있고 감은 감의 향기가 있으며 사과와 배도 각기 그들만의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다른 나라에 가서 과일을 먹으면 자기나라에서 먹던 과일의 향과 맛을 느낄 수가 없고 오직 엄청나게 단 맛만을 느낄 것이다
.

이러한 예를 들자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나오는 음식물이나 과일 독특한 맛이나 향을 가지고 있어서 맛이 있는 것은 재료가 되는 동물이나 식물들이 우주에서 받는 기가 다른 지역보다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음식의 재료가 되는 동물과 식물은 같은 지역 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 같은 지역에서 산출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은 비슷한 기질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이 다르면 그 지역에서 나오는 동일한 재료와 요리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해도 사람들의 기질이나 감정도 달라지게 된다.

이것은 음식물에 사용되는 재료들이 우주에서 받는 기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생활이 유사한 것도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동질화를 이루는 조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독특한 식생활 습관은 주식에 곁들여 국과 부식으로 반찬을 같이 먹는다는 것이다
.

두 나라 사람들의 주식은 쌀로 지은 밥이지만 부식과 함께 국 종류를 같이 먹는데 특히 일본인들은 된장국을 많이 먹는 것 같다.

한국의 국 종류는 된장국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넣어서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서 이름이 결정된다.

예를 들면 소고기가 들어가면 소고기국이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것이고 들어가는 재료로는 육류, 생선류 그리고 채소류 등 모든 것이 사용된다.

이것은 고추 가루, 고추장 그리고 된장을 사용하여 육류나 생선류의 독특한 냄새를 없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서 반찬으로 쓰이는 재료는 육류, 생선류는 물론이고 각종 채소 심지어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까지도 사용된다.

특히 김이나 미역과 같은 해조류는 두 나라 사람들만 먹는 독특한 식생활일 것이다.


두 나라에서 반찬의 재료로 쓰이는 것은 비슷하지만 요리방법은 당연히 차이가 있다
.

한국의 반찬은 주로 고추 가루와 간장이나 소금을 써서 맵고 짭짤한 데 비해서 일본의 것은 담백한 맛인 것 같다.  

식물을 식용으로 이용할 때에는 인체에 해롭지 않고 부드러워서 먹기에 부담이 없는 것들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야채류는 주로 사람들이 재배한 것을 사용하지만 때로는 산이나 들에서 채취한 것을 반찬으로 하는 수도 있다.

산이나 들에서 채취하는 식물 중에는 독을 가진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이 있지만 두 나라 사람들은 용하게 이것을 구분해 내어 반찬의 재료로 이용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산에서 채취하여 반찬으로 하는 것 중에서 버섯 종류도식용으로 할 수 있는 것과 독 버섯이 있는데 두 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잘 구분하여 식용으로 하고 있다. 산이나 들에서 채취하는 것은 버섯뿐만 아니라 식용으로 할 수 있는 식물의 어린 싹들도 봄에는 훌륭한 반찬이 된다. 

두 나라 사람들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식물들로 반찬을 해 먹는 것은 이전에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온 지혜인지도 모른다.


두 나라에 있어서 가장 특이한 식생활은 고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세계에서도 드문 일이다
.

그뿐만 아니라 살아있거나 싱싱한 생선을 사시미라고 해서 날 것으로 잘게 썰어서 먹는 것이다.

게다가 두 나라 사람들은 문어나 오징어도 즐겨 먹는데 비해서 서양 사람들은 거의 먹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

아무튼 두 나라 사람들은 지구상에서 못 먹는 것만 빼고는 다 먹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물의 종류를 미국이나 서구 사람들이 보면 거의 야만인처럼 생각될 것이다.

그들도 요즘에는 사시미와 같은 일본의 날 생선을 먹기 때문에 야만인이 되어있기는 하다.  


최근
, 미국 등에서는 일본의 레스토랑들이 많이 생겨나서 호기심에 찬 미국인들이 초밥을 먹으면서 사시미도 먹기 시작한 것 같다.

그들이 초밥이나 사시미를 먹기 시작한 것은 동양의 음식, 특히 일본의 음식에 대해서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미국이나 서구인들이 동양음식을 맛보는 것은 이미 그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던 중국 레스토랑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기름기 없는 일본의 초밥이나 사시미를 요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생겨나서 그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이나 서구사람들은 아직도 사시미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날 생선을 보면 혐오감을 느끼거나 사시미를 먹는 사람조차도 전혀 맛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로서 본다면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처럼 두 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은 거의 공통적이지만 서구나 기름진 중국의 식생활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기술한 것만으로도 두 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은 너무도 유사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이것은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 

두 나라 음식의 유사한 부분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식생활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주식은 밥이다. 밥과 함께 부식인 반찬을 먹는 것은 두 나라가 같지만 종류나 맛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반찬은 주 재료에 양념인 고추, 마늘, 생강, 파와 참기름 혹은 들기름 같은 것을 약의 개념으로 조금씩 첨가하여 만들어 낸다.

한국인들은 특히 자극성 있는 음식을 좋아해서 고추 가루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국의 음식 중에서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김치는 예외 없이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수분을 제거하고 고추 가루와 양념을 넣어서 담근다.

김치 종류는 매운 것에서부터 담백한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한국의 반찬은 김치와 함께 신 맛, 쓴 맛 그리고 단 맛이 있는 것들을 먹기 때문에 종류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인들이 여러 가지 맛을 가진 반찬을 먹는 것처럼 성격도 그러할지 모른다
.

, 고추처럼 정열적이고 신 것이나 쓴 맛이 있는 것을 먹는 것처럼 고통을 견디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단 맛처럼 다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양념을 사용하여 독특한 냄새가 나는 한국 음식들을 피하고 서구 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을 즐겨 찾는 것 같이 보인다.

한국 사람들의 입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성격도 따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대신에 애매모호한 성격으로 변해 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인들의 반찬에는 양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

한가지 예를 들면 마늘은 한국인들이 요리를 할 때 대부분 사용하는 데 대해서 일본인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양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파나 양파가 전부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김치라고 할 수 있는 쯔께모노도 배추를 소금에 절여 놓았을 뿐이지만 쯔께모노가 김치에 비해서 단순화된 것은 기후 탓으로 장기 보존이 불가능해서일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단무지에도 요리에 따라서 참기름, 참깨, 고추 가루 그리고 파 등을 넣기도 하고 담백하게 먹는데 대해서 일본인들은 대체로 담백하게 먹는다.

일본인들이 음식을 담백하게 먹는 것처럼 성격도 담백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내면적으로 대단히 복잡할 것이다.

이것은 반찬의 맛이 담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안에 수 많은 오묘한 맛을 포함하고 있어서 사람의 성격도 내면적으로 복잡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한편
, 한국인과 일본인은 찰진 밥을 주식으로 하는 특성상 국 종류는 꼭 있어야만 한다.

두 나라 사람들이 공통으로 먹는 국은 된장국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것은 약간 차이가 있다.

먼저 한국의 된장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일본처럼 국으로 먹는 된장국이고 또 하나는 대두를 쪄서 발효시킨 낫토오 상태를 끓인 청국장이다. 

한국의 된장국은 일본의 것과는 달리 발효시킨 된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독특한 냄새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떤 외국인은 이전에 한번 맛 본적이 있는 한국의 독특한 된장 맛을 찾기 위해서 한국 안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변변치 못한 시골 식당의 된장국에서 그 맛을 찾아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한국의 도시에서 먹는 된장국의 맛은 변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한국의 된장국인 청국장은 외국인들이 먹기에는 냄새가 역겨울 것이지만 한번 그 매혹적인 맛에 중독되면 벗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청국장을 먹고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음식에서도 이제껏 맛보지 못한 오묘한 맛이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청국장은 먹고 나면 속이 편안하다는 것도 매력적일지 모른다.

실제 청국장을 먹고 탈나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

일본인들도 청국장의 재료인 낫토오를 소화제 혹은 건강 식품처럼 먹는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이것을 보면 청국장과 낫토오는 한 줄기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면 두 나라 사람들 중에서 틀림없이 어디가 먼저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음식에 관해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어리석은 이야기일 뿐이다
.

두 나라만이 세계에서도 독특한 된장국을 먹는 것을 보면 두 나라의 음식 문화는 한 줄기라고 볼 수 있고 그 맛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식품으로서 생명을 유지해 왔을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에서 된장의 유래가 어떻게 되었든 제조하는 과정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간장 등은 대두를 삶아서 발효시킨 발효 식품이기 때문에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그 맛에 길 들여져 있기 때문에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의 된장국 맛은 확실히 이질적일 것이고 먹기에 어려울 것이다.

특히 된장국을 상식으로 먹는 일본인들에게 조차도 한국의 된장국 맛은 독특하게 느껴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비해서 일본의 된장국 맛은 구수하고 담백하기 때문에 외국 사람들도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 

식품 영양을 말하기 전에 일본 된장국은 맛에서 세계의 입 맛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나라는 오랜 기간 동안 대두를 삶은 것을 발효시켜서 만든 장 문화를 공유해 왔다고 생각된다.

한국에는 전통 된장, 고추장 그리고 간장이 있고 일본에도 된장과 간장이 있지만 맛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에는 전통 된장과 간장과 함께 일본의 것들도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

그러나 일본인들은 한국의 전통 된장과 간장을 그다지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음식문화가 한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 이전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한다면 한국의 된장이나 간장의 제조 기술이 일본으로 전파되고 그들 방식대로 발달되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는 반대로 근대 이후에는 일본의 된장과 간장이 한국으로 직접 들어오거나 제조 기술이 전해졌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에 와서야 두 나라 사이에서는 음식 문화가 공유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
, 옛날부터 아시아에서는 야채류나 생선류를 소금에 절여서 만든 장아찌나 젓갈류를 반찬으로 먹는 습관이 있다.

물론 서구에도 피클 같은 장아찌가 있지만 아시아처럼 다양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공통으로 먹는 장아찌 중에 단무지가 있다.

이것은 한국의 대부분 음식점에서 테이블에 내놓는 기본 반찬으로 자리를 잡았고 일본에서도 반찬 종류로 흔히 보이는 것이다.

이 외에 한국에서는 모든 야채류로 만든 장아찌나 일부 생선 종류를 이용하여 담근 젓갈류가 있다.

예를 들어 야채류는 무, 마늘, 마늘 종, 고추, 가지, 오이 그리고 매실 등을 소금물에 담가 놓거나 된장, 간장이나 고추장이 담긴 통 속에 묻어두었다가 소금기가 배면 꺼내어 반찬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선류를 이용하여 젓갈을 만들 때는 주로 정어리, 조기, 오징어, 새우 등이 사용되지만 심지어 생선의 창자 등을 재료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에 고추 가루나 마늘 등과 같은 양념을 넣어서 맛을 내어 반찬으로 하든가 아니면 김치를 만들 때 약간씩 넣어서 맛을 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장아찌나 젓갈류가 발달된 것은 겨울이 길고 농경사회이어서 식품을 장기간에 걸쳐서 보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주로 무
, 생강이나 매실 등을 장아찌의 재료로서 이용하고 있으며 그 종류도 한국보다도 적은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은 일본의 기후가 고온 다습해서 장아찌나 젓갈류를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시아 지역에서 장아찌나 젓갈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고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처럼 발달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한편
, 중국은 지리적인 위치로서는 한국과 일본에 가깝지만 반찬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 중국 요리는 주로 반찬의 재료를 프라이팬에서 데치거나 수프로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오히려 서구의 식생활에 닮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예로서 중국인들에게 채소의 요리방법을 물으면 모든 채소에 대해서 데쳐 먹는다는 대답이 돌아 올 것이다.

이번에는 그들에게 생선의 요리방법을 물어도 마찬가지 대답을 할 것이다.

중국의 음식은 요리방법에서 한국과 일본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테이블에서 장아찌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장아찌 문화는 한국과 일본이 공유한 음식 문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아찌 문화는 두 나라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났을 수도 있고 음식문화의 교류에 의해서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파되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의 음식문화가 닮아있는 것은 술도 마찬가지이다
.

한국과 일본에서의 전통 술은 주로 곡식, 특히 쌀을 이용하여 제조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서양의 술이 주로 과일을 이용하여 제조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즘에는 세계에서 술을 제조하는 방법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일반화되어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전통 술은 어디까지나 쌀을 원료로 한 것이다.

한국은 술은 쌀로 제조하는 것은 일본과 마찬가지이지만 거기에 약초, 과일이나 꽃 등을 첨가하는 것에 따라서 술의 이름이 결정되기 때문에 수 많은 종류가 생겨난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 술이라고 하면 일본 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청주가 될 것이다.

두 나라에 있어서 전통 술을 제조할 때 원료는 쌀이지만 제조 방법에 있어서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외에도 한국과 일본의 음식을 비교해 보면 겉으로는 다른 것 같지만 내용은 유사한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음식이 비슷하다는 것은 어느 일본인이
한국인이 일본 음식을 먹는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서양의 음식은 입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먹기 힘들다라는 말이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말대로 두 나라 사람들이 상대 나라의 음식을 먹을 때 그다지 거부감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두 나라의 음식 문화에 있어서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서구나 중국 등에서 식사를 할 때 사용되고 있는 테이블과 같은 것을 식사 시간마다 방으로 나르는 것이다
.

, 밥상이라고 하는 운반용 테이블에 밥과 반찬을 갖추어서 부엌에서 방으로 날라서 먹는 것이다.

아마도 두 나라에 있어서 부엌은 음식은 만드는 장소이고 방은 생활을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밥상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식사를 테이블에서 하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두 나라 사이의 음식 문화는 인적 교류나 정보의 전달에 의해서 교류가 이루어져서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

그 예로서 한국의 거리에는 일본 음식의 레스토랑이 늘어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한국 음식의 식당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제 한국인들은 일본 음식을 즐겨 먹고 있으며 일부 일본인들도 독특한 향이 있는 한국의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두 나라의 음식 문화에 서구와 중국 음식 문화들도 혼입되어 들어오지만 그 영향은 적을 것이다
.

이것은 두 나라 사람들이 이들 음식을 먹으면 입에 맞지 않기 때문에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지역에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고향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

이것은 자기가 태어난 땅에 내리는 우주의 기를 받으면서 그 기운을 받은 생물을 이용해서 만든 음식을 먹고 살았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는 지구의 각 지역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생물에 포함되어 있는 기도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동일한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비슷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성격은 유사하게 될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에 있어서 음식의 재료, 종류와 식생활이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동질화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나라 사람들 사이에 동질화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처럼 이웃 나라이면서도 나라를 강제로 점령하고 당했던 가해자와 피해자간에는 더욱 어려울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나라 사람들 사이에 있어서 동질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게 것은 일반사람들의 급속한 교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것은 나라 사람들이 상대국에 관한 정보를 쉽사리 얻을 있는 데서 기인한다.

말하자면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요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의하여 동질화를 가속화시키는 매체도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이
하나로서 상대국에 관한 문화나 정서와 같은 정보를 얻을 있는 중요한 매체라고 있다.

텔레비전은 상대국에 가지 않고도 눈으로 생생하게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텔레비전에서 오랫동안 상대국의 문화나 생활 모습을 본다면 무의식 중에 거기에 동질화되어 것이다.

일본 텔레비전 방송은 한국에서 직접 보고 싶을 때에는 위성 방송으로 보면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단한 수고를 들여서 일본 텔레비전 위성방송을 직접 보지 않아도 손쉽게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한국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컨텐츠가 거의 일본의 것과 같기 때문에 일본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만약에 일본에 살던 한국인이 귀국하여 어느 텔레비전 채널을 돌려본다면 어느 채널이나 방영되는 컨텐츠가 일본방송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유치한 내용에 기가 질려서 잠시 동안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도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다른 것이 가지 정도가 있는데 뉴스와 드라마 분야이다.

드라마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것을 제작해야 하므로 한국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 많다.

그러나 드라마도 인기 있는 작품 중에는 일본의 드라마를 그대로 카피한 것도 방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까지도 드라마처럼 제작된 것이 방영되어서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한국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으므로 당연히 한국인들은 한국의 작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여기서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독창성 있는 것의 예로서 드라마를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정이므로 다른 컨텐츠의 카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나왔다고 해도 컨텐츠는 거의 일본적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일본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이 일본화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한국인들은 텔레비전을 통하여 무의식 중에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 형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한국의 텔레비전방송은 일본 문화를 전파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면서 한국과 일본인의 동질화에 있어서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이 일본 방송의 컨텐츠를 카피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태생적인 한계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먼저 일본이 텔레비전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이 텔레비전방송을 시작할 때에는 대부분 일본 방송의 기술이나 컨텐츠를 받아들일 밖에 없었을 것이다.

  후에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은 컨텐츠 개발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원인의 가지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게 컨텐츠를 개발하기 보다 일본 방송의 것을 카피하는 것이 쉽고 실패할 확률이 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연히 한국 텔레비전 방송도 일본 텔레비전 방송처럼 가볍고 유치하면서도 내용은 전혀 없는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이제 그와 같은 프로그램에 익숙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이 일본의 카피방송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시청자들은 무의식 중에 일본인의 정서를 닮아 것이다.


이에
대해서 일부 한국인들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일본에서 일주일 정도 살아본다면 일본인의 정서와 어느 정도 닮아있는지를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텔레비전 방송은 상대국에 관한 정보를 시청자들에게 신속하게 전해주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되게 것은 한국에서 급속히 보급된 텔레비전의 영향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가 급속히 발전되던 1970 대부터였다.

때부터 한국인들의 생활이 향상됨에 따라서 전자 제품이 가정에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인들은 이야기와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자제품들 중에서 제일 먼저 텔레비전부터 사들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텔레비전 방송의 컨텐츠가 일본의 것을 카피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일본 문화가 무의식 중에 한국 시청자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은 한국인들에게 일본 문화를 알리는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일본의 것을 잠시 살펴보는 것도 나라사람들이 동질화 되어가는 것을 아는데 도움이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방송은 일본에서 생활을 했던 한국인들은 금방 있는 것들이지만 일본의 방송을 직접 보지 않은 한국인들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1989 12 31 NHK 紅白歌合戰에서 윙크(ウィンク)라는 쌍둥이 여자 가수가 수십 개의 작은 전등불이 반짝반짝 빛나는 옷을 입고 귀엽고 깜찍하게 춤을 추면서외로운 열대어(しい熱帯魚)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녀들은 모자부터 복장까지 너무 귀여운 모습으로 노래를 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20 년이 지난 어느 , 한국의 텔레비전에 윙크가 환생을 하여 나타났다.

나이도 당시의 윙크처럼 20 전후이고 복장도 유사하게 만들어 입고 춤을 추는 것도 완전히 그들의 복제판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같은 윙크였던 것이다.

, 일본의 윙크가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했는지 의아해 필요는 없다. 그녀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국판의 윙크였던 것이다.

한국의 시청자들은 일본의 윙크를 적이 없으므로 다만 한국의 가수로서 인식할 밖에 없는 것이다.


대중가요에서
유치한 카피를 것은 이뿐만 아니라 일본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한국에서 카피되어서 불려지고 있는 것이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흔히 카피되어서 한국의 노래처럼 불려지는 것은 나가부치쯔요시(長淵剛) 노래가 많은데 여기에는 돔보(とんぼ, 잠자리), 샤본다마(しゃぼん, 비누방울) 그리고 RUN 등이 있는 같다.

그리고 미소라히바리(美空ひばり) 흐르는 강물처럼 (れのように) 최근에 한국에서 불렸던 노래이다.

미소라히바리(美空ひばり) 노래는 그의 친구 가수들도 부르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것을 한국 가수가 잘도 부르고 있는 것을 듣고 있으면 재능이 많은 것인지 아니면 무모한 것인지 수가 없다.

또한 등에는 날개가 있다(ボクの背中にはがある)라든가 카스바의 여인(カスバの) 등이 있지만 이것들은 카피되어 불려지고 있는 아주 사소한 예에 지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청날 것이다.

여기서는 저작권이니 예술인의 윤리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본의 정서나 감정을 한국인들의 가슴에 심어 주어서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한국의 대중 음악인들은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시기부터 1970년대까지 배가 고픈 가운데서도 한국의 정서가 담긴 노래들을 만들어 왔던 것이다.

이후, 어찌된 일인지 수는 없지만 살게 시대에 일본 노래도 서슴없이 카피하고 있는 같다.

이들에게는 예술혼이나 정신과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일본 노래의 카피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것에 의해서 일본 정서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물들여서 동질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중예술의 카피문화는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더욱 심각해서 일본의 것을 한국화하여 방영하는 것들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일본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나면 방영할 것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까지 카피하든가 흉내를 내서 방영을 한다는 것은 심지어 놀이문화에서조차도 일본화되어서 나라 사람들의 행동양식도 닮아가게 만든다는 얘기가 된다. 

이와 같이 오락 프로그램마저 카피하고 있다는 것은 창작성이 부족하다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컨텐츠 개발을 게을리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일본의 오락방송 프로그램을 한국의 것으로 만들어 방영해도 시청자들이 즐겁게 보고 있으므로 어렵게 컨텐츠를 개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배제된 일본의 오락 프로그램을 카피하여 방영하는 것에 의해서 일본의 정서와 풍습을 한국인들에게 심어주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결과로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는 저울추는 일본 쪽으로 기울어지게 것이다. . 


한편
, 앞에서도 약간 기술한 것처럼 한국의 드라마도 일본 텔레비전 방송의 영향을 벗어날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국의 드라마 중에서도 역사를 소재로 한국적인 작품도 있지만 그것은 국내용일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한국보다 제작능력이 뒤떨어지는 나라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생각되는데 이것은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지 않았던 것으로도 판단될 있는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인의 정서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일본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최근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어서 인기를 얻은 것을 보면 후자의 영향이 것처럼 보인다.

, 한국의 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송될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드라마의 컨텐츠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의 텔레비전에서 방송을 피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은 일본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비해서 드라마가 유난히 많고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대단하다고 있다.

이를테면 일반인들이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드라마의 얘기가 없으면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드라마에 중독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되고 있는 일본의 카피 드라마를 보면서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정서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본의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이나 노래 등을 직접 방영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일본에서 방송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카피하여 방영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서 일본의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숨기고 한국의 것으로 방영하는데 좋은 조건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본에 관한 것을 직접 있는 것은 뉴스나 대담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에 의한 것이 고작이다.

사실 그들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서 얘기하는 것은 언제나 같이 일본은 믿을 없고 한반도에 피해를 입혔다고 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일본을 비난하는 것에 의해서 시청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고 생각하고 있는 같다.

사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조차도 이미 일본의 컨텐츠가 한국적인 것으로 바뀌어서 방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스스로 안방을 일본에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서 일본의 것을 금지한 것이 오히려 일본 문화를 전파시키는 꼴이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오락, 그리고 노래 등을 통하여 한국인들에게 무의식 중에 일본의 정서나 문화가 전해져서 일본인들과 동질성의 차이를 줄이게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국의 드라마나 오락 그리고 노래 등도 일본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어서 일본인들이 한국의 정서나 문화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나라사람들 사이에 균형 있는 동질성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드라마나 오락 그리고 노래 등은 일본에서 거의 방송되지 않았지만 개는 일본의 방송을 타서 알려지게 되었다.

중에서 한국의 노래가 일본에 알려진 것들이 있지만 일본 노래들이 한국에서 카피되어 불리는 것에 비해서 수량과 레벨에 있어서 아직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드라마도 편인가가 일본에서 방영되어서 일본의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같지만 일본의 드라마가 한국에서 카피되는 것에 비하면 균형이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사람들의 동질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에 관해서 약간이라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텔레비전 방송을 통하여 전달되는 컨텐츠가 한국에서 방송되고 있는 일본의 것들이 훨씬 많아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해결되어야만 것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에 있어서 일본 방송의 컨텐츠를 카피한 것이 방영되고 있으므로 문화의 예속으로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
국의 텔레비전 방송은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정서나 문화를 전달해 주는 매체로서 나라 사람들이 동질화되는데 나위 없는 매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과 일본사람들이 같은 사상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동질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과 함께 영혼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신앙을 공유하여야만 할 것이다.

, 두 나라 사람들이 같은 정신 세계의 영역에 들어있을 때 동질성을 갖게 되어서 비로소 동질화를 이룰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수 많은 신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들보다도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는 공통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두 나라 사람들의 신앙관은 과거의 교류에 의해서 공유된 것일 수도 있고 자생으로 생겨났을 수도 있다.

두 나라 사람들이 수 많은 신들을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라도 신들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두 나라 사람들은 신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에서 살고 있는 신의 후손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영혼이 하늘에 있는 신들과 연결되어 있어서 수 많은 신들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수 많은 신들을 믿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원시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이것이 소멸되지 않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

그리고 두 나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존재하고 있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신들이 건국했다고 하는 신화를 만들어야만 했다.

우선 한국의 건국 신화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 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신화에 관한 것이다.

단군 왕검의 신화는 천제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인간 세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한국의 태백산 정상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서 신시를 열고 인간 세상을 통치하였다.

어느 날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가 환웅 천왕을 찾아와서 인간이 되기를 간청했다.

환웅 천왕은 이들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이것들을 먹으면서 햇빛을 100일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은 환웅 천왕이 일러 주는 대로 하여 여자로 환생했고 웅녀로 불렸다. 

그러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동굴을 뛰쳐나갔기 때문에 인간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로 환생한 웅녀는 신단수 아래에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자 환웅 천왕은 잠시 동안 인간으로 되어 웅녀의 짝이 되었다. 

그 후에 웅녀는 단군 왕검을 낳았고 그는 한국 최초의 나라인 고조선을 세우고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에는 단군을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고 무당 중에서도 단군을 신령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한편
, 일본의 건국 신화는 한국의 그것보다는 좀더 복잡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신들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일본 건국 신화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신들에 관해서만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다.

옛날에 천상의 세계인 다카마노하라(高天原)에 신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신들 중에서 이자나기노미코토(伊奨諾尊)에서 태어난 아마테라스오미카미 (天照大神) 의 자손인 니니기노미코토(瓊杵尊)가 지상의 세계를 다스리기 위해서 하늘에서 큐슈 남쪽 휴가(日向)로 내려 왔다.

그리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木花佐久夜姬)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얻었다.

세 아들 중에서 막내 아들인 야마사치히코(山幸彦)는 맏형의 낚시 바늘을 빌려서 낚시를 하다가 바다에 빠트렸다.

그는 이것을 찾으려고 해신의 궁전으로 갔는데 거기서 해신의 딸인 토요타마비메 (豊玉毘賣)와 결혼하여 아들인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 (葺草葺不合)를 얻었다.

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토는 이모인 타마요리비메(玉依毘賣)와 결혼하여 네 아들을 낳았다.

이들 중에서 막내 아들인 칸야마토이와레비코(神日本磐余彦)가 야마토(大和) 지방을 정벌하고 일본의 초대 천왕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건국신화에 관해서 간단히 살펴보았는데 한국의 건국 신화에서는 하늘의 신이 땅 위로 내려와서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한국의 최초 국가를 세운 단군 왕검을 얻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신과 연결되어 신의 세계와 소통을 하면서 보호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

일본의 건국 신화는 하늘의 신들이 인간의 세상에 내려왔다는 것은 한국의 경우와 같다.

다만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답게 하늘의 신들과 해신들이 관련되어 있다. 일본의 건국신화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여러 신들이 등장해서 마치 인간세계처럼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건국에서도 하늘의 신이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지금도 두 나라 사람들은 수 많은 신들과 인간들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 나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수 많은 신들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되는 주위의 모든 것이다
.

한국과 일본은 건국 신화부터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주위 자연을 신으로 만드는 생각도 같다.

그런데 동서양을 불문하고 인간이 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자연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해결하거나 사후에 좋은 곳으로 가게 해 달라고 기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수 많은 전통적인 신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종교가 아주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것은 다른 나라의 신앙의 존재와는 다른 모습이다.

, 한국이나 일본의 대부분 가정에서는 여러 신들을 믿고 있는데 대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와 같은 유일신만을 믿는 나라가 많다는 것이다.

유일신만을 믿는 신앙은 현세에서 인간들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기보다는 사후를 생각하는 내세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에 존재하는 수 많은 신들은 내세보다는 현세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두 나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유명한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신을 만들고 싶으면 언제든지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렇게 두 나라에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나 불교에서 믿는 유일 신만으로는 자기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으므로 여러 신들에게 부탁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 여러 신들을 섬기는 모습은 몇 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곳에 필요에 따라서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들은 집안 모든 곳, 밤 하늘의 달과 별, 산속의 신령인 호랑이 그리고 아득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령 등이다.

심지어 신들은 고목 나무에도 있었고 신기하게 생긴 돌에도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수 많은 신들 중에서 한국의 어머니들은 소원을 빌고 싶은 곳에 지극정성으로 기원을 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매일같이 새벽이나 이슥한 밤에 뒤 곁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이 잘 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

한국의 어머니들은 가족이 잘 되기를 천지신명에게 빌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신령한 존재들에게도 부탁을 하였다.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가족이나 집안이 무사하게 지낼 수만 있다면 무수한 신들이 등장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신에게 기원을 하였던 가장 큰 의미는 마음을 정화하여 세상을 바르게 살면 가족 모두에게 탈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주의 저 너머에 있는 신령한 존재와 정신을 맞추어서 마음을 정화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일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여러 신을 믿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하여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여러 신들에게 자신이 소원하는 것을 잘도 기원한다.

그렇게 해도 한국의 신들은 용하게도 자기에게 기원하는 것과 제물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소원을 비는 사람에게 탈이 생기지 않고 무사하게 지내니 말이다.

아마도 이것은 한국에 있는 신들끼리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 탈이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의 신들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인자한 신들이었던 것이다.

한국에 있는 신들의 인자한 정도는 일년 중에서 큰 절기인 정월 대보름 같은 날에는 떡을 해 놓고 천지신명에게 빌고 집안에 있다고 믿어지는 모든 신들에게 빌어도 아무 탈이 없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같은 예는 많이 있는데 정월 초하루와 추석에는 조상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또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밤이 되면 뒤뜰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이 무사하도록 천지신명에게 기원을 한다.

이렇게 해도 신으로부터 화를 당했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기원하는 것을 모든 신들이 도와 준다는 말이 된다.

이전에는 한국인의 주변에는 온통 신들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정신적 지주로 삼아왔던 민간 신앙은 거의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

현재 한국에서 민간신앙이라는 명맥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속인들일 것이다.

원래 일반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민간신앙은 무속신앙과 같이 유지되어 왔지만 민간신앙은 사라지고 무속신앙만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 같다.

무속인들은 신당에 각자의 신들을 모시고 있다.

이들이 믿는 신들은 이전의 민간신앙처럼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사람들과 귀신들이고 하늘과 땅에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온갖 신령스러운 것들이다.

이들은 신들이 반드시 들어주어야만 할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간혹 영험이 있다고 하는 산 속으로 들어가서 기원하는 일도 있다.

현재 이들은 주로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점을 봐 주거나 액막이를 해 주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한국에서 무속인이나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유일 신을 믿는 그리스도교가 크게 세력이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증가하고 있다
. 

이것은 한국인들의 마음이 약해서이든가 아니면 감정이 예민한 탓도 있겠지만 원래의 한국인의 정신세계로 돌아가려는 조짐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민간신앙이 쇠퇴한 것은 사회가 복잡하게 된 데에도 원인이 있지만 정부의 규제와 그리스도교가 급속히 성장한 데 따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마음에 남아있는 신앙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여러 신들이 사이 좋게 공존하고 있는 민간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무속인이나 점쟁이를 찾고 있고 심지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 중에도 이들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종교가 한국에 들어와도 한국인들은 가족이 무사히 지내기만 한다면 모든 신들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유일 신을 믿는 것에서 나타나는 직선적이고 편협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포용력이 있고 둥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한편
, 일본도 한국처럼 대부분 가정에서 민간신앙을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간신앙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믿고 있고 잘 보존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심지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민간신앙을 받아들이는 생활 분위기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전에 한국에 있었던 민간신앙의 본질을 확인하고 싶다면 일본의 민간신앙을 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이것은 일본이 전통을 중시해서 일본에 유입된 문화나 문물이 쉽사리 변질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급속히 보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민간신앙도 한국처럼 불교와 각종 신들이 공존하고 있으면서 같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일본의 가정에서는 불단과 신단이 같은 장소에 있어서 부처와 여러 신들이 사이 좋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여기에 가족이 무사히 지내기를 기원하므로 대단히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도 부족하여 정월 초하루에는 신사에 가서 한 해를 무사히 지내게 해달라고 하면서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독특하게 조상신을 믿고 있어서 이승을 떠난 날 밤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처럼 준비를 하여 제사를 지낸다
.

제사는 설과 추석날에도 지내는데 이 때는 이승을 떠난 부모뿐이다.

그리고 조상 중에서 나라의 높은 벼슬을 하여 가문을 빛낸 인물은 사당을 세워서 위패를 마련하여 모시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가족관계가 유난히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승과 저승을 한 테두리로 보고 죽은 조상들까지도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사람들도 그들의 조상을 신사나 절에 모시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신령한 것들이 신이 될 수 있다는 데에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두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을 유일 신처럼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그들이 믿는 신들을 이웃집 아저씨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은 신
, 자연이나 인간을 동일한 존재로 간주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살자가 많다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두 나라 사람들이 자연물이나 인간이 죽은 후의 영혼까지도 신으로 만든다는 것은 정신적인 지주가 같음을 의미한다.

정신적인 지주가 같으면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도 유사할 것이다.

두 나라에서 여러 신들의 공존은 유일신들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가 두 나라에 들어왔지만 불교처럼 여러 신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가 한국이나 일본에 처음 전파되었을 때 여호와를 믿는 수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

민간신앙에서는 수 많은 신들을 모셔도 탈이 없던 사람들이 유일신을 믿음으로 해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정말로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나 카틀릭교가 다른 신들을 부정하는 강직한 교리로 인하여 신자들이 내세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희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에서는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라는 교리 때문에 이제까지 서로 어울려 공존하던 신들의 조화를 깨트렸다.

이 때문에 신자들은 경직되고 편협한 사고 방식을 갖게 되어서 자신 이외에는 모두 이질 집단으로 만들어버린다.

, 다른 신들을 믿는 신자들과는 공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편향적인 사고를 갖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지구상에서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가 생겨난 이래 종교분쟁은 끊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서와 화해를 가르치는 종교에 의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신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이 신의 언어를 잘 못 해석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로써 인간들에게는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나 카톨릭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활발하게 전도되고 있고 급속히 전파되고 있어도 커다란 종교분쟁을 볼 수 없는 것은 한국인들 마음의 밑바탕에 민간신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말하자면, 한국인들은 신앙이라는 것은 모두 받아들일 자세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리스도교나 카톨릭교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불교처럼 여러 신들 중의 하나로 간주될 것이다.


한편
, 일본인들도 종교를 수용하는데 있어서는 한국인들과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여진다.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를 믿는 사람들이 드문 것처럼 보인다.

사실 그들은 이들의 종교에 관해서 관심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밤하늘을 붉게 장식하는 그리스도교와 카톨릭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의 거리에서 낮에도 십자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지만 분명히 그들의 선조들이 박해를 받아가면서 믿었던 그리스도교나 카톨릭교는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본인들이 주로 민간신앙을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있어서 자연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이 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 그 탓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신흥 종교를 잘도 만들어 낸다.

한국인들이 머리가 좋은 건지 그렇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신에게 기도할 일이 많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잘도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인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새로 만들어진 종교도 한국인들에게는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이 신흥종교를 만들고 그것이 성행하게 되는 것은 이미 민간신앙에 익숙한 탓도 있겠지만 본래 천성적으로 모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흥종교를 만들어 내는 데는 일본도 한국에 지지 않는다
.

이것은 한국과 같은 사정으로 일본인들도 마음 속으로 모든 신들을 용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신앙은 본디 닮아있다.

신앙이 닮아있다는 것은 영혼과 정신의 줄기가 통한다는 의미가 된다. 

게다가 모든 신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모자이크처럼 맞추어서 완성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두 나라에서는 서양에서 빈번히 야기되는 종교분쟁 같은 것은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두 나라 사람들은 신앙마저 조화시킬 정도로 융통성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상충되는 것을 싫어한다.


여러 신들을 받아들이는 두 나라의 사람들은 같은 영혼과 정신을 소유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

이것은 미국의 심령학자인 데이비드 벵슨이 말한 것처럼 일본인들의 영혼이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말로도 뒷받침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동질화는 본래 존재하고 있었던 기본요소와 조건이 갖추어지고 매개체가 문화나 정서 등을 전달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녹여서 혼합을 시켜주는 믹서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의 역할이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생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은 믹서를 인위적으로 작동시켜도 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로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점령했던 35 동안에 걸쳐서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여 나라사람들을 동질화시키려고 했던 정책이었다.

앞에서도 기술하였지만 당시 일본의 조선 총독부는 조선인들을 일본인화하려는 정책에 따라서 조선의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마다 조회시간에는 조선학생들에게 천황이 있는 일본 쪽을 향해서 절을 시키고 신사참배도 강제로 시켰던 것이다.

실생활에 있어서는 조선인들의 이름도 일본처럼 바꾸도록 했으며 도시의 거리 이름도 일본어로 고쳤다는 것이다.

영향으로 지금도 서울의 어떤 거리에는 일본어 이름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일본은 조선인들을 일본인으로 만들어서 동질화시키려는 정책을 실시하였지만 실패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정책의 결과는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간 다음에는 1년도 지나기 전에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강제로 동질화시키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사람들이 동질화되기 위해서는 서로 공감하여 공명해야만 되는 것이다.

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서 공명하게 하는 믹서는 대중문화의 컨텐츠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여 마음을 녹아 들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중 문화가 국가레벨에서 개방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동안 광복이 되고 나서 한국 정부는 국내에서 일본 대중문화의 공연을 정책적으로 금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998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게이조(小淵惠三)총리간에 맺어진 - 공동선언에 의해서 나라의 대중문화가 개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