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섯 살 정도 됨직한 아이가 아이용 손수레에 감자 칩을 싣고 동네 길을 간다.

 

그 아이는 한적한 동네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감자 칩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지붕을 고치려고 사다리 위에 있는 어른에게 감자 칩 하나를 건네고는 말 없이 가던 길을 간다.

 

그 아이는 길을 가다가 길가에 정차해 있는 차 안의 사람에게도 감자 칩 하나를 건넨다. 감자 칩 하나를 건네 받은 사람들은 환한 웃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대가 없이 제 것을 아까운 줄 모르고 선뜻 나누어 준 아이의 마음에 감동한 것처럼 보이는 웃음이다. 이 얘기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감자 칩 광고였다.

 

이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비록 소소한 것이라도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준다면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면 상대방은 행복하게 느낄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아이처럼 마음 속에 행복을 실은 작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자. 그것이 내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되는 길이다.  

 

'이런저런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감자 칩을 나누어주는 아이  (2) 2013.11.05
만약에 이 세상이 연극이라면  (0) 2013.10.10
인연  (0) 2013.09.10
외길 인생(인생 응원가)  (0) 2013.08.25
몰카 말고 실카만 찍어  (0) 2013.08.03
마누라를 시집 보내야 할랑 게 벼.  (0) 2013.08.02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7.05.04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7.05.04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노라면 편안하게 산등성을 타고 오를 때도 있는가 하면 길을 잘못 들어서서 골짜기에 빠져서 헤맬 때도 있다. 그런데 산등성을 타고 오를 때는 아무리 오래 시간이 지나도 짧은 같지만 골짜기에 빠져서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을 때는 짧은 시간이라도 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게 마련이다. 사람은 인생의 산골짝에 빠졌을 죽음을 보게 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본성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산등성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사물들이 산골짝을 헤어나오려고 발버둥칠 때는 전부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전에 생활의 골짜기 제일 밑바닥에 빠져 있을 아내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병이나, 플라스틱 물병이나, 캔을 주워왔다. 그것을 집하장에 갖다 주면 생활비 정도는 얻을 있다. 이곳은 환경시스템이 잘되어있어서 물건을 용기의 적치금을 받고 이것을 집하장에 가져가면 환불해 주는 식이다. 그러므로 환경을 생각해서 가정에서도 폐품을 모았다가 집하장에 가져가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아내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도 동네를 돌아다니노라면 어떤 집에서는 퇴근하고 오면서 잠깐 기다리라고 놓고는 집안으로 들어가서 모아놓은 폐품들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사람을 꾸짖고는 아내를 불러서 자기가 모아놓은 것을 준다던가, 소방서 옆을 지나갈 소방서 대원이 자기가 모아놓은 것이라고 전부 내준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시에서 폐품을 수거해 가는 날에 집집마다 내어놓은 폐품을 가져오려고 하면 수거해 가는 사람이 아내가 뒤지는 쪽은 지나쳐가서 모른척하고 가져가게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친다고 수거장갑까지 건네주고 갔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친절한 사람들을 헤아릴 없이 많이 만났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그럭저럭 살면서도 세계에서 기부를 제일 많이 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돈이 있었으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을 있었다. 비록 생활이 어렵다고는 해도 그들의 따스한 마음을 있어서 우리의 마음만은 없이 부자이고 행복하다.

 

우리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천사들을 보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것은 비록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따스한 마음을 함께 건네주어서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주위에 따스한 마음을 전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부자로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는 향수와 같다.   

 

'이런저런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몰카 말고 실카만 찍어  (0) 2013.08.03
마누라를 시집 보내야 할랑 게 벼.  (0) 2013.08.02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  (0) 2013.05.31
아빠 아빠 우리 아빠  (3) 2012.07.17
커플 코드  (2) 2012.05.12
병원에서 [OK]목장 결투만 하고  (0) 2011.12.18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앞으로 그 동안 써 놓았던 소설 중 몇 토막을 연재하려고 한다. 
삭막한 현재의 인간 관계를 새로이 조명해 보려고 하였다.
인간 관계의 시발은 가족에서 시작된다. 그럼 가족이란 무엇인가? 즉,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생사 문제, 특히 자살, 노인들의 고독사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특히, 부모로서의 본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것이다. 블로거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아내가
세상을 등졌던 날처럼 차갑기가 이루 말할 없었다.

특히 산바람은 더욱 춥게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산에 도착해서 부모의 묘에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린 다음에 아내의 묘에도 술을 따르고 절을 하였다.

절이 끝나고 잠시 묘를 둘러보고 춥지만 바로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이번에도 전에 혜린이와 같이 앉았던 것처럼 묘역 끝에 앉았다.

잠시 뒤에 혜린이가 뒤에서 말했다.

아빠! 춥다. 내려가자.”

그래, 가자.”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산길을 내려 오면서 나는 혜린이에게 말했다.

네가 어릴 때에는 동네에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서 걸어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산소에 왔다가 너의 외갓집을 다녀서 서울로 갔는데 하루 종일 걸었지. 기억 나니?”

어렴풋이 기억이 .”

그런데 요즈음은 새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니까 호강인 거여.”

아빠!”

?”

이제 오면 ?”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저 죽은 사람이 묻혀있는 흙더미에 절하는 것이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게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아빠의 마음은 엄마의 마음과 통하고 있는 거여. 그저 때에 아내였다고 생각하면 그뿐이겠지만 서로의 마음이 흐르고 있는 것을 끊을 수야 없잖어? 그래서 오는 거여. 너는 오기 싫으면 와도 . 그리고 아빠도 앞으로 혼자 다녀갈 .”

아빠! 그런 아니고 교통도 불편해서 아빠도 너무 고생하는 같고 산소에 잠깐 한번 하러 많은 시간을 들여서 오기보다는 집에서 엄마 사진을 보는 나을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아빠는 여기 오는 것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어. 동네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여기만 오면 마음이 편안하거든. 말하자면 어머니의 품속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엄마 산소에 가면 아직도 옆에 있는 같은 느낌이 들거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만이지만 아직도 마음이 흐르고 있다면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여. 아빠는 그래서 오는 거여. 너는 오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와도 .”

그럼, 아빠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어?”

글쎄, 죽지 않아 봐서 모르겠다만 그냥 엄마와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여.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빠는 그래.”

내려오는 길에는 눈발이 내리쳐서 그런지 눈에 보이는 곳까지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수가 없었다,

얼굴에 차가운 눈발이 부딪쳐서 우리 부녀의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였다.

혜린아! 외갓집 쪽으로 가는 새마을버스가 2시간마다 있다니까 그것을 놓치면 걸어가든가 2시간을 기다려야 된다.”

외할아버지 때문에 외갓집에는 가기 싫은데…..”

아마도 혜린이는 이전에 외갓집에서 밤에 외할아버지에게 쫓겨난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회를 들여다 보면 모두 이기적인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러한 사회 속에도 마음이 따뜻해서 인정이 많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대를 약간 배려하는 말들을 주어서 감명을 주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얘기 볼까 한다.

 

번째 이야기: 15 이상 지난 이야기인데 동네 마트로 담배를 사러 갔다. 담뱃값을 지불하고 돌아서려는데 20살쯤 되어 보이는 카운터의 아가씨가 뭐라고 하는 같다. 궁금해서 무슨 말을 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겨우 기어 나오는 소리로 [담배 피우지 마세요] 하는 아닌가! 이런 자기가 일하는 가게 물건 팔아주는데 담배를 피우지 말라니! 그것도 어른한테 당돌하게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 !]하고 기분이 상해서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담배를 사면 담배를 피우지 마라고 얘기를 해주는 카운터 직원을 종종 만날 있다. 게다가 금연 안내 책자까지 준다. 당시는 참으로 맹랑하게 생각되던 아가씨여서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번째 이야기: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집권당에서 신문에 정책 연구원 모집을 한다고 광고를 내었다. 정치, 경제, 과학 그리고 기술 분야에 걸쳐서 모집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응모하려고 서류를 접수하러 갔는데 당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란다. [아니 광고를 내놓고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라니 무슨 변고인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직원이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라는 이유는 이후에 알았다. 논술 시험을 본다고 국회 의사당 소강당인가에 지원자들을 모아놓고 당시 평민당의 모시기 의원이 나와서 지원자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였다. 지원자는 분야 박사들 300 여명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신문 광고 값만 들여서 박사들 머리를 이용하여 정책의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것이었다. 소위 집권당에서 안들이고 고급 두뇌를 먹은 것이었다. 입사 시험을 보러 가도 점심값 정도는 준다.  그런데 정부 집권당이 공짜로 아이디어를 이용해 먹은 것이다. 후에 서류를 내지 말라던 여직원 말이 언제나 머리 속에 맴돈다. 사람을 생각할 아는 사람이다.

 

번째 이야기: 한번은 대학 교직원 모집에 응모하기 위해서 지방 사립대 교무과에 서류를 내러 갔다. 그런데 생판 보지도 못한 남자 직원이 무슨 과의 교수를 만나보라고 번이나 채근을 한다. 그래서 다른 과에 지원한다고 하니 상관없으니 과의 교수를 만나보라고 한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응모한 과에 서류를 냈지만 리가 없다. 지금도 이상한 직원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이기적으로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해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성의 본능인지는 몰라도 여성들에게 많다. 그런데 말들은 명심보감에 실려있는 말들보다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비록 소수라도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대한민국은 따뜻한 나라가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같은 세상이라고 내뱉지 마라

 

세상이 개같이 보이는 것은

 

그대가 같은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지

 

세상이 더러워서가 아니다.

 

 

세상이 더럽다고 저주하는 것은

 

깨끗한 방안에 인분을 뿌려 놓고

 

투정하면서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같은 세상이라고 나불대지 마라

 

그대의 마음이 더럽게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세상은 본디 청결 무구하다.

 

세상을 살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세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같은 세상이라는 말을 내뱉지 마라.

 

 

그대가 타인의 삶을 살기 때문에

 

세상이 개같이 보이는 것이다.

 

같은 세상을 산다고 내뱉지 말고

 

그대 삶을 살아라.

 

세상은 보는 이의 마음에 달려 있다.

'[연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9. 얹혀 살고 깔려 살며  (1) 2010.09.28
8. 비원 길  (0) 2010.09.26
7. 개 같은 세상이라고 내뱉지 마라  (1) 2010.08.24
PM 11시 59분  (0) 2010.07.13
5. 아름다운 동행  (0) 2010.06.29
4. 종다리는 노래했었다.  (0) 2010.06.19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시간이 싫어 2010.11.11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의 세상을 알고 말하는것인가 ?



옛날에 관리들이 지방에 부임하면 주민들을 착취하는 정도가 심했던 같다. 왜냐하면 올바르게 정사를 관리들에게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워 주었기 때문이다. 송덕비는 주민들이 고마운 나머지 마음에 우러나와서 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워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송덕비 건립문제로 몇몇 전임 구청장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모양이다. 주민들이 세워주었다면 뒷말이 없었을 것인데 문제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혹은 관련자들이 세워주었다는데 있다.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없다. 사람들의 후안무치가 극해 달했다. 만일 이들이 제대로 목민관들이었다면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운다 해도 사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인 송덕비를 세우니 이들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최근 들어 전임 지방 단체장들이 치적을 남기기 위해서 지방 청사를 짓다가 거덜난 곳이 군데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치적을 남기고 싶었다면 주민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쏟아 붓는 비용으로 지역 발전을 위해서 지역의 일자리를 위해서 힘을 썼다면 오랫동안 주민들의 마음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자기 치적을 남기려다가 주민들만 골병 들게 만들어 놓았다.

 

송덕비이든 건물이든 주민들의 마음에 세워두었으면 평생 칭송을 들었을 것이다. 덕이 부족한 자들이 드러내고 싶어서 송덕비나 건물을 세워두고 손가락질 받게 생겼다. 무릇 목민관들은 주민들의 가슴에 송덕비나 건물을 세워야 것이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사랑하는 색시야! 어렸을 때 변소에 가려면 도깨비나 유령이 나올 까봐서 가슴이 쿵덕거리고 머리털이 쫑긋 서던 기억이 있을 거네. 유령을 무서워했던 것은 그들이 우리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이 세상에 와서 사람들을 해코지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일 거네. 유령은 어두운 밤이나 비 오는 어스름한 낮에 나타나지만 밝은 대낮에도 방황하는 유령들이 있다네. 

 

색시야! 인간들은 다 똑 같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겉모양에서만 그런 거라네. 예를 들어서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모든 생각이나 행동들을

공유할 수가 있다네. 그리고 일본사람들은 일본사람들끼리, 미국사람들은 미국사람들끼리 같은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그들 나름대로 공통된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될 거라네.

 

그리고 동북아시아지역에 있는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사람들끼리는 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지역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생활 방식에서 공유할 것이 있을 것이네. 마찬가지로 유럽지역도 유럽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끼리 공통되는 사고를 하고 있을 것이라네. 이것은 각 지역 안에서 함께 사는 인간들끼리는 실체가 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되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속한 지역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 안으로 들어 갔을 때는 실체가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네. 다른 지역의 무리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겉으로는 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외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거지. 예를 들면 아시아지역에서 아메리카 지역으로 들어간 사람이나 반대로 아메리카지역에서 아시아지역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그러한 생활을 할 것이네.

 

색시야! 이것은 마치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한눈을 가진 원숭이의 무리 속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주 얘기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네. 그 얘기는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홍수에 떠내려가다가 겨우 땅으로 올라올 수가 있었는데 그곳은 한 눈을 가진 원숭이들만 사는 땅이었다네.

 

당연히 한 눈을 가진 원숭이들이 두 눈을 가진 원숭이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따돌릴 것은 당연할 거네. 두 눈을 가진 원숭이가 그 땅에 살고 있었던 한 눈을 가진 원숭이들에게 원숭이는 본디 두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네. 외눈 원숭이의 세계에서는 두 눈을 가진 원숭이의 존재는 묻혀 버린 겨.

 

이것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살던 지역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사는 사람들도 실체가 없는 유령과 같은 존재라네. 태어나서부터 몸에 밴 습관들을 버리고 다른 지역의 습관에 녹아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미국, 캐나다 그리고 호주 같은 곳으로 이민을 가서 사는 사람들이 그러할 껴. 그들은 그 지역에서 실체는 있지만 동떨어져서 유령과 같은 존재로 살 수 밖에 없을 거네. 반대로 이것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네.

 

색시야! 이민자들과 같이 자기 지역을 떠나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사는 사람들은 그 지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유령과 같은 생활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네. 왜냐하면 이것은 자기가 태어났던 본래 지역의 영혼이 마음 속에 자리하기 때문이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사는 사람들이 유령과 같은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좋은 증거가 있다네.

 

어떤 일본 여인이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와서 살았다네. 이 부인은 한국에 살면서 일본이라는 것은 입 밖에 내지도 않고 한국사람처럼 고아들과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한평생을 열심히 살았다는 겨. 그런데 임종 때에 <우메보시(일본의 매실 장아찌)가 먹고 싶다>고 했다네.  이것을 보면 아무리 그 지역에 녹아 들어가 사는 것처럼 보여도 본래의 지역의 영혼이 언제까지나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네. 

 

그래서 이민자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사람들은 옮겨간 지역에 실체만 있는 것이지 모든 영혼의 근원은 본래의 지역에 두었기 때문에 유령이 떠돌고 있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겨. 그들이 그 지역 사람들 속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유령이 사람들 사이를 방황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거라네. 이것은 지역을 옮긴 사람들 모두가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네. 그러나 그들이 옮겨진 지역에서 유령처럼 살아가지만 그 후손들은 그 잔영에서 벗어나서 육체와 정신이 그 지역으로 녹아 들어간 실체를 가진 인간으로 살아 갈 것이네.

 

색시야! 꼭 머리를 풀어헤치고 하얀 옷을 입었다고 유령이 아니라네. 내 혼을 태어난 곳에 두고 몸만 옮겨 온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사는 것도 유령과 같은 거라네. 그래서 그 유령들은 대낮에도 활동을 한다네. 색시는 실체와 정신이 함께 있어서 행복한 거라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 6. 8. 14:23 [연재]시

2. 사랑 마음 새



지평선 나무들 위로

 

어스름이 스며드는 빗발 속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 마음 새를 날려 보낸다.

 

 

마음을 떠나서

 

사랑 마음 새는 빗발을 뚫고

 

사랑하는 이에게

 

죽을 힘을 다해서 날아 간다.

 

 

숨이 꾸역 꾸역 막히도록

 

비바람이 불어대도

 

갈 길을 막는 험한 산을 넘을 때도

 

여기만 지나면 다 온 것이라고

 

사랑 마음 새는 마음을 다 잡고

 

피곤한 날개를 쉬임 없이 휘저었다.

 

 

끝 없는 바다 위를 날 때

 

마음과 몸이 지쳐서

 

금방 떨어져 죽고 싶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야만 한다고

 

사랑 마음 새는 남은 힘을 끌어 모아서

 

다시 힘 찬 날개 짓을 한다.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사랑하는 이를 찾아온

 

사랑 마음 새는

 

비에 젖은 날개를 접고

 

따뜻하고 다정한 품에 안겨서

 

끝 모를 잠 속으로 빠져 들다.

'[연재]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PM 11시 59분  (0) 2010.07.13
5. 아름다운 동행  (0) 2010.06.29
4. 종다리는 노래했었다.  (0) 2010.06.19
3. 서러워도 내 한참 서러워도  (1) 2010.06.15
2. 사랑 마음 새  (0) 2010.06.08
시를 연재하는 시인(?)의 변명  (0) 2010.06.03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곳 시내 중심에 있는 공원에 가끔 산책을 나가면 몇 백년씩 묵은 나무들이 빽빽하다. 그런데 이 곳 공원은 부러진 나무 등걸을 자연 그대로 방치해둔다. 그러면 그 부러진 나무 둥치 위에서 새 나무가 자라나는데 뿌리를 땅에 까지 내려야 하므로 몇 가닥이 노출 된 채로 늘어져있어서 마치 나무둥치에 얹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두컴컴한 숲길을 걷다 보면 청설모란 놈들 몇 십 마리가 조르르 따라오다가 숲으로 돌아가 버린다. 동네에 한 두 마리씩 있는 청설모는 사람만 보면 도망가는데 여기 놈들은 오히려 사람을 쫓아다닌다.

 

공원에 있는 청설모들은 산책 나온 사람들이 먹이를 주지마라는데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주어서 요렇게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는 거다. 우리나라에도 새에게 먹이를 주면 어떻게 용케 알고 찾아와서 손바닥 위의 먹이를 주워먹는다는 거다.

 

동물들은 참 단순하다. 자기에게 이롭게 해주면 따라다니고 못 살게 굴면 금방 겁을 먹고 도망을 간다. 아마 저 사람이 나를 해칠 것인지 아닌지 아는 모양이다.

동물들은 예민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좋은 사람한테는 다가가고 마음이 불량한 사람은 피하는 것이다.

 

동물은 단순해서 사람의 마음을 쉽게 읽고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영리해서 계산을 하여 서로 교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리숙한 옛날 시절에는 잘도 어울려 살았는데 지금은 서로 머리를 굴리느라고 마음이 안 맞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동물이 사람같이 되고 사람이 동물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리한 사람들이 제 꾀에 자기가 빠져서 고립화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남의 마음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교감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현대인의 고독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설모처럼 졸졸 따라다니면 개차반 취급을 받거나 스토커로 신고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입 꾹 다물고 먼 산의 구름을 가리키는 김 삿갓이 되는 수 밖에 없겠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색시야! 그대의 마음을 비춰주는 등대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네. 그런데 등대는 바다를 다니는 배들에게 위치를 알려 주기 위해서 멀리까지 빛을 비추어 주는 장치라네. 등대 불빛을 보고 배는 항로를 잡고 안전하게 항해를 하게 된다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자기의 등대가 되는 사람을 정해 놓고 그 불빛을 보고 인생길을 찾아서 안전하게 미래로 항해를 할 수 있을 거라네.

 

색시야! 등대는 모두 외 따른 곳에 서 있어서 그런지 등대지기 노래에서처럼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네. 등대는 외롭게 홀로 서서 배들을 안전하게 안내하기 위하여 멀리까지 빛을 비추어 주고 있다네. 색시야! 어렸을 때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는 동요를 배웠을 거네. 이 노래처럼 하늘에도 등대가 있어서 하늘 길을 안내한다는 겨. 이처럼 세상 살아가는 모든 곳에 길안내를 하는 등대는 꼭 필요하다네.

 

한 사람의 등대는 마음이기 때문에 마음의 등대라고 하네. 마음의 등대가 바르게 비추면 그 사람은 한 세상을 안전하게 잘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갈 껴. 그런데 마음의 등대 불빛이 흔들리면 그 사람의 인생 항로도 갈 길을 잃어서 방황하게 되고 날이 밝아서 보면 제자리서 맴돌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거라네.

 

그래서 마음의 등대 불빛은 스스로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라는 노래처럼 등대의 불빛이 흔들리면 사람은 험한 세상에 갈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라네. 사람은 세상이라는 너울 속을 항해하는 위태한 일엽편주와 같은 거라네. 그래서 세상의 큰 너울을 타 넘기 위해서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내 길을 찾아서 나아가야 하네. 

 

색시야! 가정에서의 등대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을 거네. 그들이 불빛을 잘 비추어 줄 때 가정과 아이들이 안전하게 똑바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는 겨. 그러나 가정의 등대 불빛이 흔들리면 가정은 항로를 잃게 되고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은 갈 길을 몰라서 허둥지둥할 거라네.

 

이보다 더 큰 비극은 가정의 등대가 망가져서 불빛을 잃으면 가정은 파탄이 나고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위해서 세상의 험한 바다를 헤엄쳐 나가야 한다네. 그래서 현재의 사회라는 바다에는 가정의 난파선에서 쏟아져 나온 많은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기를 쓰고 헤엄을 치고 있다네. 가정의 등대는 가정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쌍 등대에서 불빛을 비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거네.

 

색시야! 사회의 등대는 엘리트 계층이 될 거네. 사회의 등대가 제대로 불빛을 비추어 준다면 그 사회는 올바른 방향을 잡아서 나아갈 거라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의 등대에서는 불빛이 새어 나오지 않는데 이것은 사회를 비추는 모든 등대에 잔뜩 먼지가 끼어 있어서 그렇다네. 그래서 사회의 등대 불빛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고 내부만 비추고 있다네.

 

말하자면 지금 사회의 등대는 그들만의 항해를 위한 등대라는 거지. 등대는 비출 곳을 비추어 주어야 제 역할을 하는 거라네. 등대만 많다고 해서 바닷길이 다 훤해지는 건 아니네. 사회의 등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갈 길을 잃은 사회라는 배에 탄 사람들은 저런 등대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잘 돌아가지 않는 등대를 원망하게 되는 겨. 그런데 이 등대는 누군가가 잘 청소를 하면 훌륭하게 등대 구실을 하게 될 거네.

 

색시야! 한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을 잡아주는 것은 정치라는 등대일 껴. 지금 그 등대는 깨져 버려서 어떤 때는 불빛이 새어 나오다가도 어떤 때는 꺼져버리고는 한다네. 그래서 한 국가라는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등대의 불빛이 약간 비추일 때는 잘 나아가다가도 불빛이 꺼졌을 때는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게 된다네. 등대지기가 기술이 좋으냐 어떠냐에 따라서 등대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 이네.

 

색시야! 정치라는 등대는 모든 국민을 실은 배를 안전하게 유도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대라네. 이것이 고장 났을 때 빨리 고치지 않으면 큰 일 난다네. 그러나 그 조그만 등대에 기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두 달라붙어서 수리를 하기 위해서 난리법석을 떤다고 고쳐지는 것은 아니라네. 모든 사람들은 등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들 있지. 그렇다구 등대에서 가끔 새어 나오는 불빛을 나만 비추라고 아우성쳐도 세계라는 거대한 파도소리에 휩쓸려 버릴 거라네.

 

정치의 등대는 항해하는 사람들이 전부 부셔놓고서 자기들을 비추어 달라고 아우성치지만 등대지기는 고장 난 등대를 어떻게 수리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는 항해하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수리를 해 보지만 좀처럼 고칠 수가 없다네. 등대는 고쳐야 하는데 외부에서 기술자를 불러 올 수도 없고 내부에서 해결해야 되니 등대지기는 한숨만 나올 수밖에 없다네. 그렇지만 정치의 등대는 절대적으로 수리해야 한다네.

 

색시야!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등대는 사랑의 등대라네. 사랑의 등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맑디 맑은 불빛을 비춘다네. 그 등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애정, 동정과 연민이 가득 찬 빛을 뿌려준다는 겨. 사랑의 등대는 남녀간에 사랑하는 마음을 찾게 하고 이웃의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게 하는 마음도 찾게 하고 세상에서 병들고, 아프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찾을 수 있게 불빛을 비춰준다네. 

 

색시야! 세상의 모든 것에는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안내해 주는 불빛이 있어야 하는 겨. 만약에 등대의 불빛이 없다면 세상의 바다 곳곳에 숨어있는 암초에 부딪쳐서 난파하게 될 거네. 걸릴 것 없는 그 넓은 하늘에서도 샛별이 등대라고 한다네. 세상을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나, 가정이나 그리고 사회나 등대의 불빛을 보고 항로를 잘 찾아야 되는 거라네. 색시님!  샛별을 보고 길을 찾았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먼 미래를 보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Posted by AURAKY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전버튼 1 2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AURAKY의 월드리딩! 세상을 요리조리 보고 쓰는 살아있는 경험의 블로그 입니다.
AURAKY








free counters

블로그코리아에 블UP하기

믹시


달력

 « |  » 2020.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