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13. 04:38 교육

글쓰기에 관한 조언


마침 오늘(2013-06-12) 조선일보 만물상에 글쓰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하버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공의 비결은 글쓰기라고 대다수가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자연과학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 6년 여 동안 교수로부터 혹독한 글쓰기에 관한 훈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에서는 글쓰기는 작문이 아니라 언어기술일 뿐이라고 하며 낮추어 보고 있는가 하면 글쓰기를 체계적이고 실용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도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예로 들은 하버드의 경우처럼 글쓰기는 자기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법이므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글쓰기에 관하여 간단히 얘기해보기로 하겠다.

 

1. 우선 글의 제목이 정해졌으면 기---, 즉 서론-본론-결론의 순으로 써야 한다. 논술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이나 에세이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주장하고 싶은 생각을 서론에 도입하고 본론에서는 자료를 이용하여 서론에 관한 증명을 한 다음에 결론부분에서는 그러므로 서론이 정당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것을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처럼 써야 한다.

 

2. 문장을 쓸 때는 단문으로 쓰면 문장이 간결해 보이면서 뜻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영어문장들을 보면 이 말이 이해가 될 것이다. 복문이나 중문을 되도록이면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전에 “~, ~로 길게 연결해서 써야 잘 쓴 글이라고 인정하던 때가 있었다. 이와 같은 글 쓰기는 가장 저급하게 생각된다.

 

3. 주어를 빼 먹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한글로 글을 쓸 때 그러한 예가 많다. 영어에는 반드시 주어부터 나온다. 이처럼 한글도 주어-목적어 술어 순으로 써야 한다.

 

4. 형용사나 부사와 같은 수식어는 되도록이면 남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아름다운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야 잘 썼다고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최하의 글이다. 꼭 필요한 수식어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야 자기의 생각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될 것이다. 문장체가 강하거나 부드러운 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 나타났을 뿐이지 수식어에 의한 것은 아니다.

 

5. 글은 내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이므로 화려한 기교를 부릴 필요는 없다.

 

6. 가끔은 글을 쓸 때 문장이 뒤바뀌는 수가 있다. 문장뿐만 아니라 품사도 그렇다. 전체 글을 읽고 그 문장이나 품사가 들어갈 자리에 배치해야 할 것이다. 접속사, 조사나 단어는 적합한 것을 선택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에 따라서 문장 전체의 의미가 다르게 보이는 수도 있다.

 

6. 마지막으로 글에 끌려 다니지 말고 내 생각이 글을 지배해야 한다.

이상에서 기술한 내용만을 알아도 그럴듯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글 쓰기 실력은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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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이는 대개 10시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었고 우선 가게로 들렸다가 가게 문을 닫으면 나와 같이 아파트로 돌아왔다.

공부에 지장이 있을까 봐서 가게로 오지 말라고 해도 듣지를 않는 것이었다.

혜린이가 가게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 부끄럽게 친구를 가게로 데리고 오냐?”

괜찮어. 아빠. 만약에 우리가 가게를 한다고 우습게 보는 놈이라면 말도 섞지. 그런 애가 아냐.”

걔네 집은 한다니?”

아버지가 공무원이라나 .”

그래?”

날은 그렇게 하고 말았지만 결국에는 아이가 나중에 사위가 되었던 것이다.


혜린이는
학교를 졸업하고 말만하면 누구나 있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남자친구는 방위 근무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혜린이는 월급을 타서는 고스란히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그것을 혜린이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가게만 해서도 먹고 있으니까 돈은 저금해두었다가 네가 필요할 .”

아냐, 아빠 이제 가게 그만 두라고 가져다 주는 거야. 앞으로 내가 벌어서 아빠 .”

말을 듣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의 나이 아직50 중반이다. 벌써 일을 손에서 놓으면 어떡해? 그러니 아직은 걱정 말고 돈은 저금을 . 나중에 내가 움직일 없으면 조금 나누어 다오.”

그건 걱정 . 아빠. 걔한테 내가 그랬어. 나는 아빠하고 살아야 한다고 그랬거든. 애도 그렇게 한다고 했고 부모도 허락했다던데?”


그건 내가 싫다. 인생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 것이다. 때문에 너희들의 인생을 낭비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돈이 없으면 먹고 살만큼만 달라는 거다. 알겄지?”

그런데 아빠는 나를 위해서 재혼도 안하고 아빠의 인생을 낭비 했잖어? 그만큼 내가 보상해주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아빠의 인생을 내가 잡아먹은 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잖아?”

이것아! 내가 너를 키운 것은 아빠로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이고, 아빠가 재혼을 하지 않은 것은 엄마가 아빠의 마음에 살고 있기 때문이야. 알겄냐?”

나도 그래. 자식이 아빠를 먹여 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래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거야.”

됐네. 그건 그렇고 걔하고 결혼을 거냐?”

그렇게 하기로 했어.”

그렇게 하기로 했어? 쉽게 결혼하네.”

걔는 대학4 동안 나에게 허점을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 걔하고 결혼하는 것은 마음이지만 이것만은 약속하자.”

.”

결혼을 하면 집에 자주 테니까 일주일에 하루 걸러라도 아빠한테 전화해 주기. 오우케이?”

 , 집에 자주 건데?”

결혼하면 그렇게 . 약속은 지켜. 알았지?”

나는 혜린이가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책임지려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데 내심 대단히 흐뭇하였다.

그러나 부모로서 움직일 있는데 자식에게 신세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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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나 척추손상 등을 환자자신의 세포로 치료할 있다는 [줄기세포 치료] 관해서 함부로 치료 받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성명을 일본 재생의학회가 1 발표하였다.

 

 

일부 클리닉 센터가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고 시행하고 있는데, 학회는 [유효한 치료로서 기대는 크지만 아직 안전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였다고 아사히 신문이 밝혔다.

 

 

환자의 지방이나 골수 등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는 다양한 세포로 변화되기 때문에 재생의료에 응용이 기대된다. 대학 등은 국가의 지침에 따라서 안전성이나 효과를 확인하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규정을 받지 않고 일부 클리닉 센터가 난치병이나 장애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환자들은 치료를 받기 전에 국가의 승인이 있는가를 확인하라고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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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계고교 출신으로 로봇 제작 분야에 창의력을 인정 받아서 입학 사정관제 전형으로 KAIST 입학한 학생이 자살을 하였다는 것이다. 학생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미적분과목에서 학점을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은 로봇이 좋아서 전문계 고교를 선택했고 입학 사정관제 전형으로 합격될 만큼 로봇분야에서 탁월한 실적을 올린 같다. 이와 같은 학생들을 위해서 카이스트에는 수학 과학의 학과 과목을 보충해주는 사이버 강의가 있었던 모양이지만 결국 학과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던 같다.

 

사실 전문계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에서 영어나 수학을 따라간다는 것은 힘들 밖에 없다. 그들이 고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학과 같은 인문계 고교 과목은 영어라면 일주일에 시간 정도이고 수학은 세시간 정도이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일주일 내내 영어와 수학을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보충 수업까지 하는 인문계 고교 출신들을 도저히 따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학생은 카이스트 강의를 따라가기 벅찰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너무 빨리 좌절을 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없다. 어디 천재들이 모든 과목을 했는가 말이다. 그들은 곳에 집중하는 집중력이 대단했기 때문에 천재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수학을 지지리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교정이나 강의실에서 수학 관련 교수나 조교들을 보면 쫓아가서 귀찮게 물었기 때문에 교수 요원들이 그를 피해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그는 수학 문제를 풀다가 모르면 한밤중이라도 관련 교수 집에 전화를 걸어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대학의 수학 교수가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생의 적극성이 부족했다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을 자살로 몰고 책임은 그의 적극성뿐만 아니라 출신 교교, 대학, 부모 모두에게 있다고 있다.

 

사실 전문계 고교에서 카이스트에 입학했다면 학교의 자랑이고 후배들의 희망이다. 그래서 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 두고두고 성공 사례로 전달 것이기 때문에 학생이 받는 부담감은 엄청났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은 한국 대학들의 공통된 현상이지만 교수는 강의하고 나면 이것을 따라가든 아니든 학생들의 몫이다. 그럴까? 

 

아마도 학생이 일본 대학이나 서구 대학에 다녔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자기 꿈을 접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 대학들은 거의 도제식에 가까운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학생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끊임없이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교육에서도 어느 정도 이러한 요소는 있다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학생을 이끌어 주었다면 안타까운 결과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본인의 난관을 타개하려는 의지력 부족과 사회와 대학이 낳은 총체적인 결과라고 있다. 미래에 유능한 로봇 관계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새싹을 잘라버린 같아서 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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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erongrong 2011.01.12 17: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정말 안타깝네요....

    아직 어린학생인데..
    학원이라도 끊지...ㅠ.ㅠ

  2. Entanglement 2011.01.12 17:2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이나 서구라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껍니다. 실제로 미 아이비리그 공대들은 자살률이 꽤나 높지요. 도제식이니 하는 것도 대학원이나 해당하는 얘기이지 대학 1학년에게 교수가 관심가져주는 대학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3. 파크야 2011.01.13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한국 학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ㅋ
    저도 어렸을적부터 지금까지 학교교육에 대한 환멸을 갖게만들더군요 ㅋ
    좋은 정보 잘보았습니다 ㅋ



사회를 들여다 보면 모두 이기적인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다.

그러한 사회 속에도 마음이 따뜻해서 인정이 많은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상대를 약간 배려하는 말들을 주어서 감명을 주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마음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얘기 볼까 한다.

 

번째 이야기: 15 이상 지난 이야기인데 동네 마트로 담배를 사러 갔다. 담뱃값을 지불하고 돌아서려는데 20살쯤 되어 보이는 카운터의 아가씨가 뭐라고 하는 같다. 궁금해서 무슨 말을 했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겨우 기어 나오는 소리로 [담배 피우지 마세요] 하는 아닌가! 이런 자기가 일하는 가게 물건 팔아주는데 담배를 피우지 말라니! 그것도 어른한테 당돌하게 얘기를 한다고 생각하고 [ !]하고 기분이 상해서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담배를 사면 담배를 피우지 마라고 얘기를 해주는 카운터 직원을 종종 만날 있다. 게다가 금연 안내 책자까지 준다. 당시는 참으로 맹랑하게 생각되던 아가씨여서 말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번째 이야기: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집권당에서 신문에 정책 연구원 모집을 한다고 광고를 내었다. 정치, 경제, 과학 그리고 기술 분야에 걸쳐서 모집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응모하려고 서류를 접수하러 갔는데 당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 간절하게 정말 간절하게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란다. [아니 광고를 내놓고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라니 무슨 변고인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직원이 서류를 접수시키지 말라는 이유는 이후에 알았다. 논술 시험을 본다고 국회 의사당 소강당인가에 지원자들을 모아놓고 당시 평민당의 모시기 의원이 나와서 지원자들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하였다. 지원자는 분야 박사들 300 여명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해가 되었다. 알고 보니 신문 광고 값만 들여서 박사들 머리를 이용하여 정책의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것이었다. 소위 집권당에서 안들이고 고급 두뇌를 먹은 것이었다. 입사 시험을 보러 가도 점심값 정도는 준다.  그런데 정부 집권당이 공짜로 아이디어를 이용해 먹은 것이다. 후에 서류를 내지 말라던 여직원 말이 언제나 머리 속에 맴돈다. 사람을 생각할 아는 사람이다.

 

번째 이야기: 한번은 대학 교직원 모집에 응모하기 위해서 지방 사립대 교무과에 서류를 내러 갔다. 그런데 생판 보지도 못한 남자 직원이 무슨 과의 교수를 만나보라고 번이나 채근을 한다. 그래서 다른 과에 지원한다고 하니 상관없으니 과의 교수를 만나보라고 한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응모한 과에 서류를 냈지만 리가 없다. 지금도 이상한 직원이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회가 아무리 이기적으로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해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성의 본능인지는 몰라도 여성들에게 많다. 그런데 말들은 명심보감에 실려있는 말들보다도 사람을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비록 소수라도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 대한민국은 따뜻한 나라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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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채점을 해 본 결과 점수가 대폭 하락하여 고교에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무슨 수능 성적이 물건 값이나 주식처럼 대폭 하락했다는 데에는 실소를 금할 없다. 게다가 교육방송 연계율 70% 믿다가 낭패를 봤다는 대목에서는 과히 압권이다.

 

이것을 보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대부분 자기가 중심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맡겨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없다. 아니 어쩌면 교육 방송 핑계를 대서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을 정당화시키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학교 교육, 참고서 그리고 교육방송은 어디까지나 지식을 습득하는데 보조 학습으로 활용하는 것이지 이것들이 자기를 대학의 입학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교육 방송에서 내용 중에서 시험이 출제된다면 방송을 학생들 점수는 같아질 것이고 그러면 무슨 변명이 나올 것이다. 어차피 수험생은 자기 점수에 불만을 가질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수가 하락해서 패닉 상태라는 것은 웃겨도 자그마치 웃기는 얘기가 아니다. 이것은 출제자들더러 수험생들 입맛에 맞게 출제해달라는 얘기일 것이다. 시험은 변별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어서 쉬울 때도 있을 것이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쉽든 어렵든 변별력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채점을 학생들이 실망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망할 하나도 없다. 어차피 동안의 입시 준비 과정에서 자기가 만큼 결과가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보면 분명히 과정에서 모의고사 같은 것을 봤을 전국 석차는 수능시험에서도 점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 방법이라든가 얼마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방안을 가지고 공부를 했는가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공부가 힘들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쉬운 쪽을 선택하여 교육방송이나 사교육 등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 버린다. 그러나 자기 중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되풀이 한다면 시험이 어려워서 점수가 하락했다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자기의 성적과 석차는 중간에 모의 고사 등을 통하여 알고 있을 것이고 이것을 통하여 이미 수험생들은 수능 성적을 알기 전부터 어느 대학에 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채점 점수가 의외로 적게 나왔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내가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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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도 노벨 화학상은 [유기 합성에 있어서 파라듐 촉매의 크로스 커플링(cross coupling)] 업적으로 미국의 델러웨어 대학의 명예교수인 리처드 , 일본인으로서 미국 퍼듀 대학 특별교수로 있는 [네기시 에이이찌(도쿄대 출신)] 혹카이도 대학 명예교수인 스즈키 아키라(혹카이도대 출신) 씨에게 수여된다고 발표되었다. 노벨상 수상은 일본인 전체로 17, 18 째이고 화학상으로서는 6, 7번째가 된다고 한다.

 

리차드 헥

리차드 헥

리차드헥

네기시 에이이치


아키라 스즈키

일본은 이제 노벨 상을 독차지 하는 유럽과 미국의 대열에 들어간 같다. 얼마 미국 정보 서비스 회사인 톰슨 로이터사는 예상한 일본의 노벨 수상자들은 의학 생리학상과 화학상에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예상대로 일본인이 화학상을 받았지만 업적이 다른 분야였다.

 

그렇다면 톰슨 로이터사가 예상했던 일본의 과학자들도 어느 시기에는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은 노벨 과학상을 받을 과학자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는 말이 헛된 말은 아니다. 이렇게 일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을 보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약간 그런 기미가 생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아파하고 있어서야 노벨상을 받을 수는 없다. 다행히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와 이웃해 있으므로 처음에는 그들의 방법을 체득하는 것도 노벨상을 받을 있는 방법이 있다. 사실 대학 교육체제가 한국과 일본에 들어 싯점에서 보면 인구를 감안하여 한국에서 지금쯤 명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배출되었어야 한다. 이것을 생각하여 일본이 노벨상을 빈번히 받을 밖에 없는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사실 노벨상 수상은 유럽과 미국의 독무대나 다름 없다. 특히 과학상이라고 있는 물리, 화학 그리고 의학 생리학상은 그렇다. 유럽은 현대 과학의 발원지로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있고 미국은 2 대전 후에 전란을 피하여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 과학자들과 그들이 가르친 제자들에 의해서 노벨상을 유럽과 함께 나누어 받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변방 대륙들은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노벨상을 수상하는 유일한 변방 대륙의 국가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는 데는 일본도 유럽의 학문 체계를 받아들인 있다. , 일본은 현대 대학이 들어설 인재들을 대부분 독일로 유학을 보내어 유럽 학문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제자들을 유럽 과학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제자들은 일본에 있는 대학으로 퍼져 나가서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노벨상을 받을 있는 학문을 하는 길을 터득하고 사람들이 전파한 교육으로 현재 일본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되는 토대가 되었다고 있다. 전통은 지금도 일본 대학원에 살아있다.

 

여기에 일본인들의 장인 정신을 있다. 가지 명제에 매달리면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완성시키려고 하는 자세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보기에 처음에는 답답하고 머리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만 10여년 정도 지난 후에는 그들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학자지만 장인 정신은 무서울 정도이다. 예를 들면 2 대전이 끝난 물자가 없을 쓰레기 통을 뒤져서 연구 재료를 구하여 연구를 했다는 것이 일본의 연구자들이다. 아니면 책상 앞에 앉아서 있는 연구를 해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학자도 있다.

 

거기에 보태서 정부가 연구를 지원할 일단 연구비를 지급하면 연구 내용 자체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을 있다. 그러므로 연구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 길을 파고 있어서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에 노벨 과학상을 받으려면 반드시 이론을 확립해야 하는데 일본의 과학자들은 이미 이것을 터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년도 노벨 화학상도 헥크 크로스 커플링 이론, 스즈끼 크로스 커플링 이론, 네기시 크로스 커플링 이론 등으로 불리워서 학자 모두 자기가 처음 이론을 확립한 것이라는 것을 세계 학계에 알리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이 아무리 논문 수를 많이 양산해도 이러한 이론 확립이 없으면 노벨상을 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상에서 일본이 노벨 과학상을 많이 배출하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받을 있는 원인에 관해서 주마간산식으로 살펴 보았다. 이제 한국의 대학들도 외국에서 연구한 학자들이 대학 강단에 서고 그들과 더불어 연구하는 제자들이 있는 조만간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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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칼럼니스트가 한국의 교육 현장을 둘러보고 중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말은 자녀를 대학까지 진학 시킨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있는 말이다.

말이 옳다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신에 그러한 교육 방법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분명히 칼럼니스트가 것처럼 한국의 학생들, 특히 고등학생들은 새벽에 집을 나가서 거의 12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학생들의 모든 일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공부라는 것이 여기에서 누차 말한 것처럼 대입에 관련된 문제의 정답 하나라도 맞히기 위한 공부이다. 그러므로 교과서에 하나의 이론이 나온다면 그에 관련된 개의 문제를 푸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교육을 체계가 비슷한 일본 교육과 종종 비교하는데 나라의 교육 체계는 비슷할지 몰라도 교육 방법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르다. , 일본 교육은 교과서에 나오는 기초적인 것을 철저히 이해시킨다면 한국 교육은 그에 근거한 문제를 수도 없이 되풀이 푼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공부 양에 학생들이 찌들 밖에 없다. 이러한 공부는 우리 사회에서 소위 상류층으로 들어가는 고시 공부라든가 공무원 시험 한국에서 보는 모든 시험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상류 대학에 가면 거기에서 얻는 이익이 대단하므로 부모들은 열심히 시킬 밖에 없다.

 

한국의 고등학교까지의 학생들은 찌들어 있는 것은 틀림없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국가 전체로 보아도 상향 평준화되는 국민 수준을 고려할 때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찌들은 학생들로 잔재주 피우는 사람은 만들 있어도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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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교육부가 3900억원을 들여서 객관식(사지선다형)시험을 전면 폐기하는 개혁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것은 무엇을 배웠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있는지로 학력 평가를 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그런데 시험을 객관식에서 주관식(서술형)으로 변경한다면 목적을 달성할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사실 한국은 , , 고등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을 비롯하여 대부분 객관식 시험이다. 그런데 한국도 , , 고등학교에서 전부 주관식으로 시험을 보고 입학 시험도 주관식으로 치르던 때가 있었다. 기간은 현대 교육기관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1969 예비고사(현재 수능과 비슷함) 도입되기 전까지이다.

 

그러므로 현재 보편화되어 있는 객관식시험으로 전환된 지는 40 년이 되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객관식 시험은 오로지 입시를 목표로 하여 해답만을 부지런히 기억하기를 요구하는 공부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개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십 개의 유사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교과 과목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없이 시험 문제만 죽어라고 풀어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얘기한 무엇을 배웠는지 에도 해당되지 않고 시험을 보는 아이를 키워내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결과 사물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단순화된 두뇌들만 양산하는 꼴이 되었다. 거기에다 조급증을 갖게 하는 덤까지 얻게 되었다. 복잡화된 현대 사회의 겉보기에 어울릴 있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데는 적합한 방법일지 모른다.

 

한편, 1969 이전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주관식 시험을 치렀다. 시험지에 해답을 쓰기 위해서는 교과 과정을 완전히 이해해야만 하였다. ,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여서 웬만한 도시의 명문 , 고등학교에서는 평균 50점을 넘기면 상위 등급에 속하였다. 만큼 점수 얻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얻은 지식은 평생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초가 된다. 거기에 학생에게 사물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습성을 갖게 하고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로 만드는 효과도 있다.

 

아마도 이전에 주관식으로 시험을 사람들에게 객관식과 주관식 시험을 치를 학생에게 어느 쪽이 도움이 되는 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주관식 시험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것인지에 관한 두뇌를 키워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주관식 시험을 부과한다면 거기에 맞추어서 공부를 하고 넓고 깊은 사고를 키워 것이다. 물론 선생이나 학생은 괴롭고 성가시다.

 

객관식 시험을 치는 지금에도 부모는 자녀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주관식 시험을 보는 것처럼 공부를 시켜야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자녀는 커서 틀림없이 자기 앞가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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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연공서열을 좋아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심지어 대학도 서열을 세워야 직성이 풀린다. 예를 들어 한국 대학의 서열은 서울대 연고대라고 말들을 한다. 여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외국 대학들도 그런 알고 줄을 세우려고 한다. 특히 일본 대학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그렇다. 한국처럼 일본의 수도인 동경에 있는 동경대, 게이오대, 와세다대가 최고 서열을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안다.

 

그러나 이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일본은 실제로 국립대들과 사립대들의 서열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없다. 굳이 비교한다면 동경대, 쿄토대, 오사카대, 동북대, 큐슈대, 혹카이도대 제국대학들이 서열 앞을 차지할 것이고 사립은 게이오, 와세다, 동지사대를 꼽을 있을 것이다. 

 

요즈음 카이스트의 교육 개혁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울대와 비교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대학을 서열로 세울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서울대는 종합대학이고 카이스트는 자연계열이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분야를 평가할 때는 간접적으로 비교가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이 경쟁 관계에 있기 위해서는 우선 단과 대학들의 구성이 비슷해야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 동부의 명문대들에 대항하기 위한 서부의 캘리포니아 대학과 동부의 MIT 대항하는 칼텍처럼 서로 비슷한 분야의 대학끼리의 경쟁관계는 성립할 있겠지만 대학들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앞에서 일본의 국립대학들과 사립대학들을 한국 대학처럼 세우기는 어렵다고 했다. 왜냐하면 정부의 지원금과 우수한 인력(교수진)들이 국립대학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일본 교수들은 국립대가 월급이 적음에도 국립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같은데 이것은 아마도 명예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국립대에서 정년 퇴직을 하고 사립대로 가는 수는 있어도 사립대에서 국립대로 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 일본에서 동경대에 대항할 대학은 쿄토대학이다. 비록 규모 면에서는 동경대가 쿄토대의 이상이지만 그렇다.

 

동경대는 1877년에 설립되어 주로 관리들을 양성해 왔다. 동경대 생들이 교수 기침소리까지 노트에 적어서 점수를 받으면 정부 관리로 취업은 약속해 놓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비해서 쿄토대는 동경대 설립 후의 20 뒤에 학문을 목적으로 독일 유학자들을 주축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이들이 내세운 기치는 자유로운 학풍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학풍이란 자기 연구 분야에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생각할 있다는 얘기이지 실제 연구 생활은 강제 노역이상의 세기이다.

 

일본 사회에서의 서열 평가는 동경대 다음에 쿄토대를 놓는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노벨상이나 수학의 노벨상 격인 필즈상 수상자는 쿄토대 출신들이 훨씬 많다. 학계나 연구계의 수장을 차지하는 비율은 대학이 비슷하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괴짜가 많은 것도 쿄토대학이 앞선다. 그러므로 서열을 만드는 자체가 되는 것이다.

 

동경대와 쿄토대는 같은 단과 대학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나마 비교가 가능하지만 서울대와 카이스트는 경쟁 관계에 있을 없다. 아마도 일본으로 비교하자면 동경대와 단과대학인 동경공대, 히토츠바시 대학과 비교하는 것과 다를 없다.

말하자면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미래에 카이스트가 학문하는 곳으로 자리잡는다면 MIT 칼텍처럼 것이다. 만약 개혁이 실패한다면 그저 그런 국내 대학으로 전락할 것이다. 카이스트는 쿄토대학이 모델이 있다. 자기들만의 학풍을 갖는 것이다. , 외국에 기울지 않는 자기들만의 연구를 꾸준히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대학 세우기를 좋아하지만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서울대나 카이스트나 대학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여 세계 학계에서 인지되면 그게 명문 대학이고 앞서는 대학이다. 한마디로 서울대와 카이스트는 대학들의 특성상 경쟁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세우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김에 놀아나지 말고 대학의 발전을 보아야 것이다.




Posted by AURA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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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30 0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해당 과만 비교하면 되지요. 결국 카이스트가 승리하는 군요. 하하 농담입니다. (미안해요 SNU 사람들) 중요한건 THE-QS에 서울대, 카이스트가 50위권, 70위권에 들어와 있어도 외국 학생들은 잘 모르지요.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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