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은 정치인이나 군인이나 재력가,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닌 테리 폭스(Terry(Terrance Stanley) Fox, 1958. 7. 28-1981. 6.28)라는 22살에 세상을 달리한 젊은이이다.

 


테리 폭스는 고등학교와 SFU(Simon Fraser University), Port Coquitlam (Metro Vancouver), British Columbia, Canada 의 마라톤과 농구 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그는 골육종이라는 암으로 1977년에 오른 쪽 다리를 잘라내고 의족을 하였지만 마라톤과 농구를 계속하였다.  

 

1980년 그는 암 연구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폭스는 2,400만 명(그 당시 캐나다의 인구 지금은 약 3,300만 명) 1 달러씩 기부하여 주기를 바랐다. 그는 4월에 캐나다의 동 쪽에 잇는 섬 세인트 존스(St. John’s),뉴 펀들랜드(Newfoundland)에서 출발하여 매일 풀 코스 마라톤에 맞 먹는 거리를 의족을 한 몸으로 달렸다. 그가 온타리오(Ontario) 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유명해져서 수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동참하였다.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지 9 개월이 지난 후 암이 폐까지 전이 되어 이 세상을 마감하였다.

 

그가 죽은 후 1981년에 처음 테리 폭스 달리기가 열리고 그후 60 개국으로 확대되어서 하루 동안에 가장 많은 암 연구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현재 5억 캐나다 달러의 기금이 그의 이름으로 모아졌다. 그의 이름을 딴 빌딩이나 거리 그리고 공원 등은 캐나다 도처에 있다.

 

이상이 요절한 테리 폭스의 대략적인 이야기이다. 테리 폭스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것은 그가 불치의 암에 걸렸으면서도 난치병인 암을 치료하기 위한 연구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 성치 않은 몸으로 노력한 것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비록 자기는 완치될 희망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도 걸릴 수 있는 암 연구를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국토 횡단 마라톤을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의 오른 쪽 다리는 의족을 한 채였다. 그 때 그가 달리는 모습을 영상에서 보면 불쌍하기 보다는 거룩한 성자의 모습의 느낌마저 든다.

 

이것을 보면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정치인, 군인, 지식인보다도 훨씬 큰 감명을 사람들에게 준다. 사회는 일반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반인들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 것이고 테리 폭스 같은 영웅도 나올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밝은 사회, 꿈이 있는 사회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에고이즘이 판치는 요즘 세상이라지만 남을 생각하는 정신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Posted by AURA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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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성의 전당 2019.01.13 22: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에고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제가 또 댓글을 달았다면 죄송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책 내용 중 일부를 아래 글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정보를 드리는 것뿐이니
    이 글이 불편하시다면 지우거나 무시하셔도 됩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https://blog.naver.com/ecenter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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